• 최종편집 2024-03-29(금)
 
소태영(평택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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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대 규모’, ‘첫 청와대 앞 100m 행진’, ‘세계가 놀란 평화집회등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면서 40여 일 간 꺼지지 않은 촛불의 여정에는 수많은 찬사와 기록의 수식어가 뒤따랐다.
 
 매주 주말이면 광화문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 민심, 그리고 마음으로 응원한 국민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광화문에 밀려든 민심의 강물은 넓고 깊었고 평화의 물결은 위대했다. 공권력과 맞서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며 꽃 벽으로 평화로운 집회를 만들어 갔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건강한 양식을 갖춘 구성원임을 우리 스스로 증명했고,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민주시민의 자질 역시 증명해냈다. 가슴 벅차게.
 
 왕조국가나 독재국가에서 통치권자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며 나라를 도탄으로 내몰면, 국민이 단결하여 힘으로 응징하고 통치권자를 쫓아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영국의 명예혁명이고 프랑스의 대혁명이다. 근대 이후 민주국가는 모두 법치주의를 선택하였다. 국민이 확정한 헌법과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이 위법한 행위를 할 때, 탄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 모든 범죄자도 최종판결 때까지는 무죄의 추정을 받는다. 대통령에게도 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저 위대한 촛불은 청와대를 넘어 대한민국을 바꾸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오로지 국민에게서만 나온다는 헌법의 중심에 뚜렷이 선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안고, 손잡고 나온 젊은 부부가 바라는 것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휘둘린 박근혜의 탄핵뿐이었을까? 청소년들이 손에 들고 외치는 저 촛불의 함성이 비단 정유라의 이대 입학특혜라는 부당한 문제뿐이었을까?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나온 것이 수입농산물에 피폐화된 농촌경제 때문이었을까? 노동자들이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 대기업에 특혜주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이 정권의 반 노동정책 뿐이었을까? 깊은 바다에 자식들을 수장한 세월호의 부모들이 나와 외친 것이 자기 자식의 죽음에 대한 원망뿐이었을까?
 
 이러한 이유들이 다는 아닐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촛불의 강으로 이룬 인파 속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었단 말인가. 진정 국민이 바라는 것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결코 자기의 정파적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고 막아선 경찰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청와대로 가는 길은 박근혜를 끌어 내리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함께 한 국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축제인 동시에 국민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이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 흘렸던 눈물은 당하고 억울해서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스스로가 가슴 속에서 나오는 진정한 자기의 목소리를 들었고, 책임의식과 행동의 양심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촛불이 어둠을 태운 아름다운 빛의 나라지만 이제는 차갑게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의 올바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하고, 잘못된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 모두가 한없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고단할지라도 국민이 국가의 주인 됨을 스스로가 떳떳하게 인식하고,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자유와 정의를 올바르게 세우고, 국민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노고와 열정이 진정 필요한 시대에 서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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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영의 세상보기] 자유와 정의를 위한 노고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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