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이귀선(한국문인협회 평택시지부장)
 
 
기고 이귀선.jpg 밤새 살며시 내린 비는 겨울의 길목으로 발길을 옮겨가고 청정한 기운을 내뿜어주는 시간 속에 오늘도 새하얀 소프라노 음색이 향기를 뿜어줍니다.
 
 필자가 살고 있는 평택시 안중읍의 연립주택에는 동과 동 사이에 어르신들의 쉼터가 있습니다. 오고가는 사람들도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쉴 곳이 없으신 할머니들이 모여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시골이라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살고 계십니다. 가끔은 자식들의 방문으로 행복을 서로 나누고, 또 소소하고 소박한 황혼의 어르신들이 모여서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들마루입니다.
 
 이 들마루는 7년 전 연립주택 4동의 반장 일을 맡은 필자가 어르신들을 위해 손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며가며 벽돌을 주워 모으고, 주변 고물상에 나무판자를 구해오고, 지물포에서 자투리 장판도 구해오고, 철물점에서 못을 구하고 드릴을 지원받아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르신들은 신이 나서 커피도 타 오시고 국수도 삶아 오시고 들마루는 한바탕 잔치를 했습니다. 노인정도 없이 외로웠던 어르신들이 쉼터가 생겼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필자는 덩달아 신바람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남자 분들이 지나가시면서 어설프다고 놀렸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좋고 나쁜 것을 떠나 쉼터가 생긴 것에 대해 너무나 행복해 하셨습니다. 물론 길 건너 복지관이 있어 여러 가지 배울 것도 있고 즐길 수 있는 편의 시설도 있지만, 이분들에게는 경제적 여유가 넉넉하지 않는 분들이라 애용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신 분들입니다.
 
 어르신들은 시에서 지원해주는 일을 하십니다. 두 분이 한조가 되어 어린이집으로 주방 일을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3일, 다음 주는 2일, 서로 번갈아 가면서 한 달에 10일을 근무하면 이십만 원을 받을 수 있고, 여기에 노령연금 이십만 원을 수령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조금씩 아껴가면서 생활하시기 때문에 복지관 이용은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이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우신 어른들이 모여서 잠시 스쳐지나가는 분들과도 서로 소통하고 외로움을 달래며 자식들이 준비해준 간식도 서로 나누면서 황혼의 끝자락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서로 나누고 계십니다. 조금 아쉬움이 있다면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들마루를 만들어 드리고 싶은데, 필자의 생활도 경제적 여유가 없어 늘 미안함만 남습니다.
 
 오늘도 들마루에는 흰머리 검은 머리 꽃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자식자랑 손자자랑으로 행복하고 향기로운 수다들을 흩날리고 있습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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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쉼터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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