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소태영(평택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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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해방 이후 최악의 홍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지난 8월 말 두만강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을 태풍 ‘라이언록’이 휩쓸고 가면서 많은 비를 퍼부은 것이다. 사망·실종자가 533명이고 이재민이 11만8천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피해는 1959년 800여 명이 사망한 사라호 태풍, 1972년 500여 명이 사망한 베티 태풍에 이어 한반도에서 인명 피해가 세 번째로 많은 재해로 기록되고 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심각한 피해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홍수가 얼마나 심했으면 강원도 강릉과 고성 앞바다까지 뿌리째 뽑힌 나무들과 쓰레기 더미가 무더기로 둥둥 떠내려 올 정도였을까 싶다.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국제사회도 인도적 지원을 시작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코리아’에서는 ‘침묵’만이 흐른다. 북한 정권의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는 넘쳐나지만, 인도주의의 목소리는 없다. 핵실험을 한 북한 정부가 미울 것이다. 그러나 ‘인도주의’는 한 사회의 품격을 반영한다. 이러면 안 된다.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는 인도주의를 상징하는 말이 있듯이.
 
 정부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라며 외교적 성과로 내세웠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결의안이나 정부의 어떤 제재에도 인도적 지원은 예외다. 통일부는 분명하게 북한 인권 개념에 인도주의를 포함한다고 했다. 입만 열면 북한인권을 이야기 해왔다. 인도적 지원을 부정하는 인권은 성립하기 어렵다. 핵실험 제재와 대북 인도적 지원은 별개의 문제이다. 진보진영의 반대 속에서도 정부가 그렇게 통과시키고 싶어 했던 북한인권법의 시행령 제7조는 ‘재해 등으로 인하여 북한주민에게 발생한 긴급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원’ 등 인도적 지원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여당은 물론 야당과 시민단체도 정치공학에 사로잡혀 ‘인도주의’에 침묵하고 있다. 침묵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핵문제와 수해는 다른 차원이고, 인도주의는 ‘야만의 전쟁’ 중에도 작동하는 ‘문명의 증거’다. 우리도 어려운데 도울 형편이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콩 한쪽이라도 나누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동포에 대한 예의’에 앞서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있다. 북한의 수해가 묻는다. 우리는 야만과 문명, 어디쯤에 서 있느냐고.
 
 우리나라엔 현재 쌀이 남아돌아가고 있다. 묵은 쌀을 바다에 버리고, 동물사료로 사용한다는데, 그러고도 앞으로 더욱 많이 창고에 쌓이게 될 것이다. 쌀값은 더 떨어지고, 농민들은 농사의 보람도 자부심도 잃고 한숨만 깊어진다. 남아도는 쌀을 북한으로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북한은 지금도 식량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남한에서는 쌀이 남아돌아가는데도 북한의 식량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쌀이 남아서 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같은 민족이 굶고 있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서로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막대한 자원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쏟아 붓는 북한 정권의 태도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아무리 북한 정권이 미워도 북한 주민들을 재해와 기아의 고통 속에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 북 핵실험에 대한 제재는 엄격하게 진행하더라도, 수해 피해를 본 주민을 돕는 일은 인도적 차원에서 허용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기 어렵다면 우선 민간단체들의 자발적 사업이라도 발을 묶지 말고 최대한 지원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인도적 차원의 교류가 한반도 긴장 완화에 기여한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우리는 되새겨 보고, 전 민족이 힘을 모아 홍수피해를 이겨내고 평화통일의 새로운 초석을 마련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벌써 함북 산간 지방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을 것이다. 겨울을 맞아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이 더욱 악화되어 인명과 재산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남쪽 사람들의 따스한 손길이 추운 동포들을 감싸줘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인도주의의 실현이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수재민들이 다가오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긴급구호와 피해복구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동포애다.  하늘이 남한에게 준 기회임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막대한 자원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쏟아 붓는 북한 정권의 태도는 규탄하되, 이번 재해로 기아의 고통 속에 놓인 북한 주민들을 위한 긴급구호와 피해복구 인도적 지원은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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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태영의 세상보기] 북한 수해복구 인도적 지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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