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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문화유산]안중읍 용성리는 산성(山城)의 고장
작성일 : 11-12-13 12:59    



1. ‘용성(龍城)’이라는 지명

최근 시청 공무원들과 함께 동삭동에 건설될 공원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대화 가운데 화두(話頭)는 ‘평화’였다. 이 자리에서 평화로운 세상을 모두가 꿈꾸지만 ‘평화’의 개념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혹자는 미군주둔에 의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이야기하였지만, 나는 극구 그와 같은 평화를 반대하였다. 강대국의 패권전략에 따른 무력에 의한 평화는 진정한 평화일 수 없기 때문이다.

평택지역은 전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전쟁이 많았던 것은 서울과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과 함께 도로교통과 수로교통이 발달했던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 평택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가장 큰 전쟁은 고려 말 왜구의 침략과 임진·정유년의 소사벌대첩, 그리고 근대에 있었던 청일전쟁과 한국전쟁이다. 전쟁은 인명을 살상하고 국토를 황폐하게 하며, 수 천 년 이어져 내려온 문화유산을 파괴한다. 사람들의 마음도 강퍅하게 하여 인심을 사납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평택지역에서의 ‘평화’는 이와 같은 역사성에 기반 해서 논의되어야 한다. 전쟁이 아닌, 동북아의 국가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며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평화’에 담긴 화두인 것이다. 

고려시대 평택지역에는 16개 정도의 행정구역이 있었다. 이 가운데 서평택 일대에는 용성현, 광덕현을 비롯해서 오타장, 신영장, 포내미부곡, 육내미부곡, 감미부곡 등 7~8개 정도의 행정구역이 있었다. 당시 안중읍 용성리, 학현리, 덕우리 일대에는 용성현이 있었다. 용성현은 5세기 고구려가 남하하였을 때 ‘거홀현’이라고 부르다가, 통일신라 때에는 ‘거성현’으로 바꿔 불렀고, 고려시대에 용성현이 되었다. 고을의 중심은 안중읍 용성리 설창마을에 있었다. 설창마을은 서북쪽으로 무성산, 비파산, 자미산, 동쪽으로는 안산과 삼정승산이 보호해주었고, 남동쪽으로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천혜의 요새였다.
고을의 중심이 천혜의 요새에 현(縣)이 설치된 것은,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함께 고려 후기에 설치되었을 ‘설창’과 관련이 있다. 설창은 세곡을 보관하던 조창(租倉)이었다. 조창은 본래 청북면 어소리 ‘구설창’에 있다가 고려 말 용성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설창의 이전은 조수(潮水)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조세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고려 말 왜구들은 해운로(海運路)를 장악하고 조운선을 약탈하거나, 삼남의 해안가에 위치한 조창(漕倉)을 공격하였다. 팽성읍 일대가 왜구의 침입을 많이 받았던 것도 하양창이라는 조창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성현에는 공민왕 7년에 처음으로 왜구가 침입하였다. 충청도 면주(당진지역)를 침입한 왜구가 용성현까지 불태웠고, 공민왕 9년에도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공민왕21년에는 양광도(경기남부, 충청도 일대를 관할하였던 행정구역) 도순무사 조천보가 용성현에서 왜구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2. 용성리 일대의 성곽은 왜구격퇴의 흔적

왜구의 침입은 조정의 골칫거리였다. 백성의 안위도 문제였지만, 조세운송의 어려움으로 국가운영이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고려 말 용성리 일대에는 무성산성, 자미산성, 비파산성, 용성리성, 강길마을성 등 모두 5개의 성곽이 신축되거나 보수되었다. 성곽들은 용성리 설창마을을 중심으로 축성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설창마을은 정복 불가능한 요새처럼 보인다.
무성산성, 자미산성, 비파산성은 용성리 서쪽을 방어하는 산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산성은 자미산성이다. 경기도박물관의 발굴조사결과에 따르면 자미산성은 본래 산봉우리에 쌓은 퇴뫼식 토성이었다가, 나중에 석성(石城)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돌로 쌓은 석성은 1950, 60년대까지만 해도 어른 키 높이의 성곽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관리가 소홀해지는 틈을 이용해 주민들이 성곽의 돌들로 구들을 놓고 축대를 쌓으면서 이제는 무너진 잡석들만 남아 있게 되었다.
용성리성은 설창마을 입구 작은 구릉에 있다. 조선후기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성곽은 조수(潮水)를 이용하여 침입하는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강길마을성은 국도 39호선 건너편 강길마을 뒤쪽에 있다. 강길마을은 포승읍 만호리의 대진과 현덕면 권관리의 계두진에서 수원을 거쳐 한양으로 나가는 길목이었다. 산성은 용성현의 보호와 육로를 통하여 침입하는 왜적을 방비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평택지역에는 용성리 일대의 성곽유적 외에도 15개 내외의 성곽과 전쟁유적이 있다. 성곽은 미군기지나 군부대처럼 ‘전쟁’과 관련 있다. 우리가 전쟁관련 유적을 발굴하고 보호하는 것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다. 평화로운 동북아, 평화로운 평택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쟁관련 유적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는 고민과 논의를 해야 한다. 그것이 산성유적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2011.12.10)

※사진설명1: 덕우리에서 바라본 자미산과 비파산, 사진설명2: 안중읍 용성리 설창마을, 사진설명3: 안중읍 용성리 청룡마을(2010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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