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세상사는 이야기] <어머니>의 손맛과 뒷맛 ‘아직 잠자는 캐릭터’ <2회>
작성일 : 21-09-23 11:09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세상사는 이야기 증명사진.jpg

  아직도 등장인물들이 잠자듯 꿈꾸는 장치는 이 작품의 한계다. 안타까운 건 캐릭터뿐만이 아니다. 졸지에 윤락녀로 전락해버린 예쁜 우등생 은수의 행적도 미심쩍다. 적잖은 대목에서 독자들이 의심을 거두지 못할 요소들이 도처에 널브러져 있다. 예컨대 누구라도 정황상 들어맞는다고 해서 죄다 그리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흔히들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면 뉘라서 생각처럼 자유롭겠냐는 동정론을 펼치곤 한다. 그러기 일쑤지만 필자의 판단은 좀 남다르다. 평소에 담았던 그릇에 그 원인의 일단이 녹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은수의 상황은 그리로 밖에는 몰아갈 불가항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전적으로 그녀의 선택이었다. 뚜렷이 오판을 수반한 선과 악의 갈림길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핑계를 들이대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자의성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확연히 자포자기적인 능력의 남용이라고 본다. 차후에 벌어질 예상되는 일들은 무책임한 작가의 몫이 될 수 없어서다. 수순대로 당해버린 사람의 구차한 아픔이자 토로일 뿐이다. 그렇게 저지른 미련함을 몸소 깨닫는 데는 불과 얼마 걸리지 않는다. 파괴당한 몰골을 몰고 온 결과에 대한 채무자는 남이 아닌 자신이니까.

  현실감이 떨어지는 구성의 몰락은 비단 은수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친구인 은행원 용재와 준영이의 결단이 다시금 기이하리만큼 작동하고 있다. 다른 조건이라면 얼마든지 다소곳이 자랐을 아이로 미화된 세희의 완벽한 연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학창시절 별반 친하지도 않았던 울산 횟집에 사는 동창생 정숙이의 변신 또한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것들을 두고 인간관의 차이로 정리한다 해도 벌점은 남는다. 필자 역시 선량한 인간 품성을 극구 예찬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작위성만으로 구태의연하게 이야기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작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있을 법한 가능성을 찾아내는 주역을 떠맡았기에 그러하다. 개연성이 살아있는 사실성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꾸며나가야 하는 문학적 책무를 지라는 거다. 단순히 이럴 수도 있으며 이랬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감성만으로는 안 된다. 멋대로 처방해 무차별 투약을 일삼아서는 곤란하다. 절대적이진 않으나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되는 성질이나 있음직한 일 또는 일어남직한 사실을 창출해야 한다.

세상사는 이야기.JPG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사건은 회사의 부도 후에도 연거푸 터진다. 졸지에 튼실한 딸자식을 잃고 새로운 아들딸을 얻어 가는 장면이야 모질게 탓하고 싶진 않더라도 문제점은 늘 상투적인 작위성에 빌붙어있다. 가령 현장감이 떨어질망정 훈훈한 전개에 코끝이 시큰한 건 그래도 본전이다. 다만 그런 일이 너무 잦으면 효과는 급격히 반감되고 만다. 어디선가 불현듯 나타나 죽을힘을 다해 어려운 이웃을 살리는 영민한 준영이가 여타 이기심으로 무장한 인간 군상을 심히 부끄럽고 당황스럽게 만든다고 해서 허다한 실책을 뒤덮을 순 없는 노릇이다. ‘나라가 소용없다면 나라도 힘이 돼야지’라는 라임 섞인 말까지 야박하게 굴 필요는 없겠다. 사정이 급박할 때 나타나 흔쾌히 돕는 회사 간부들의 이타적 국면은 그런대로 흐뭇하다. 응당 받아야 할 남편의 몫인데도 끝까지 거금(?)을 사양하는 아내의 경지야말로 성인군자에게서나 가능한 일이기에 오히려 느슨한 지점이다. 잘 사는 친정에서 고생 모르고 자라난 고운 여인이 걸어가는 길목을 더 이상 처세의 극치라고 흐릿하게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어머니>에는 곳곳에 무던히 애쓴 흔적이 확연하다. 적잖이 안쓰럽고 처절한즉, “아 아름다운 사람들이여!”라는 감탄이 절로 터질 지경이다. 그런 공동체라면 한 번쯤 실패를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차제에 당국에서 쓴맛을 본 사람들을 모아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 뵌다. 인재를 중시하는 컨설팅 회사의 탄탄한 조직력에 나도 모르게 깊숙이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왠지 그 대목에서 공허감이 밀려온다. 예쁘게 살아가는 구성원들 사이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찬바람이 옷 속을 헤집은 터다. 생동감 없이 떠들어 제치는 호들갑은 그저 소란일 뿐이라고 일러주었다. 그 와중에 머리를 싸맨 작가의 심중에서 우러나왔다 할지라도 세팅하듯 완벽하게 꿰어맞추는 소품들이 불만의 근인(近因)이었다. 등장인물을 대하는 독자의 눈초리는 매번 매섭다 못해 무지하게 무섭다는 점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한층 집요한 작가 인식을 한시도 잊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602호)에는 <어머니>의 손맛과 뒷맛 ‘일부 의아한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Copyright ⓒ 평택자치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으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