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시인
가을비에 젖고 있는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수로를 따라 파고드는
안개도 쫓아내지 못하고
밤이 드러누운 들판에서
당신의 기도소리를 들었다
추수가 끝난 논바닥들은
맨몸으로 비를 맞으며
안개 속으로 숨어들었다
가끔 지나치는 자동차의 불빛이
들고양이의 눈에 반사되어
정지신호처럼 깜박이는 곳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다
쓸데없는 가을비를 맞았다
서서히 짙어가는 안개에
당신도 뒤돌아서서
어딘 듯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둠 속에서 당신의 기도가
축축이 젖어가는 우강평야에
한 사랑을 내려놓았다.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