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신호리, 평택현 읍내면 지역... 1914년 ‘신대’와 ‘호치’ 통합

안정리, 평택현 남면 지역... 1914년 ‘서정자’와 ‘안현’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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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리 택지(2003.07.24 촬영) 

◆ 팽성읍(彭城邑) 신호리(新虎里)

 조선시대 평택현 읍내면 지역이다. 1914년 신대와 호치를 통합해 신호리라고 했다.

1. 신촌: 신호1리의 자연지명. ‘새말’이라고도 한다.

2. 호치(虎峙): 신호 2리의 마을. 범고개에서 유래됐지만 간척사업 때 산을 허물어 매립하면서 사라졌다.

3. 범치말: 호치의 자연지명. 석봉리의 지형이 범아가리와 같아 이곳으로 넘어가는 고개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4. 까치울: 범칫말에 있었던 마을. 토탄이 많이 출토됐다.

5. 여승지: 신호1리 새말 북서쪽 능선 움푹 패인 곳. 승지벼슬을 지낸 여(呂)씨 가 북향으로 묘를 썼던 곳에서 유래됐다.

◆ 팽성읍 안정리(安亭里)

 조선시대 평택현 남면이다. 본래는 서정자리와 안현 두 마을뿐이다가 세집매, 일곱집매가 형성됐다. 1914년 서정자와 안현이 통합돼 안정리가 됐다. 일제 말 일본 해군비행장이 건설되고, 한국전쟁 중에는 K-6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서정자 마을이 폐동되고 일곱집매 일대에는 기지촌이 형성됐으며, 안정7리 인근에 피난민촌이 형성되면서 12개 마을로 늘어났다.

1. 길마재: 안정1리·5리·10리의 마을이름. ‘안현’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안정1리만을 의미했지만 마을이 늘어나면서 분동됐다. 마을의 형국이 길마안(말안장)처럼 생겼다고 해 유래됐다.

2. 서정자: K-6 미군기지 신정문 안쪽에 있었던 마을. 1952년 미군기지 주둔으로 폐동돼 길마재와 송화리로 이주했다. 옛날 정자(亭子)가 있어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쉬어갔다고 한다.

3. 일곱집매: 안정3리 자연지명. 서정자 서쪽에 있었으며 일곱집이 마을을 형성해 유래됐다. 미군기지 구정문에 위치해 기지촌의 중심이 됐다.

4. 성터말: 안정4리 자연지명. 농성 동쪽 큰길가에 형성된 마을.

5. 시장통: 안정6리의 마을. 안정리 시장이 있는 곳에서 유래했다.

6. 신흥: 안정7리의 마을. 본래 피난민촌으로 새롭게(新) 흥성(興)하라는 뜻에서 지었다.

7. 국민주택: 안정12리의 마을. 마을 안에 국민주택단지가 조성돼 유래됐다.

8. 농성(農城): 축성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둘레 300미터 내외의 토성. 신라 말 중국에서 이주한 임팔급이 쌓았다는 설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왜군이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쌓았다는 설도 있다. ‘성산’, ‘이성’이라고도 한다.

9. 이성재: 원정리에서 안정리로 넘어 오는 나지막한 고개. 농성(이성)으로 넘어오는 고개라고 해 유래됐다.

10. 구정문: 1951년 K-6 미군기지 정문으로 사용했던 곳. 안정리 쇼핑몰이 형성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82호)에서는 ‘평택시 팽성읍 추팔리(秋八里)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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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팽성읍 신호리·안정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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