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대사리, 한국전쟁 뒤 피난민 수용소 형성 2개 마을로 늘어

대추리, 1952년 K-6미군기지 주둔 곤지머리로 집단 이주

 

평택시사.JPG

▲ 인구 2천780여명이 거주하는 팽성읍 

◆ 팽성읍(彭城邑) 대사리(大沙里)

 조선시대 대사동이다. 평택현 남면에 속했고, 1914년에는 서면 대사리에 속했다. 대사(大沙)라는 지명은 마을 앞 독천 변에 곱고 흰 모래밭이 펼쳐있어 유래됐다. 한국전쟁 뒤 대사2리에 피난민 수용소가 형성되면서 2개 마을로 늘어났다.

1. 대사(大沙): 대사리의 본마을. ‘대삿골’이라고도 한다. 마을 앞 독천 변에 흰 모래가 많아 유래됐다.

2. 큰말·작은말: 대사1리의 자연마을.

3. 수용소: 대사2리의 자연지명. ‘피난민촌’이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뒤 피난민 수용소로 조성됐다.

4. 승지골: 대사리 큰말에 있는 지명. 옛날 승지벼슬을 지낸 사람이 낙향해 거주했다.

5. 임금님길: 대사리 큰말을 지났던 충청대로의 다른 이름.

6. 행궁: 큰말 김영식 씨 집터로 온양행궁 가던 임금이 묵어갔던 집.

7. 영성청: 조선시대 대사리에 설치돼 중앙과 연락업무를 담당하게 했다는 관청.

8. 군계천: 대사리와 성환읍 사이에 흐르는 하천. 조선시대에는 ‘독천’이라고 불렀다.

9. 구개: 옛날에 배가 들어왔던 뱃터. 갯가여서 유래됐다. 

◆ 대추리(大秋里)

 조선후기 평택현 서면지역이다. 단일마을로 경작지가 풍부하고 마을규모가 커서 대추리가 됐다. 1942년 일본해군 비행장이 건설되면서 마을 일부가 수용됐고, 1952년 K-6미군기지가 주둔하면서 곤지머리로 집단 이주 당했으며, 2007년 미군기지 확장사업으로 인해 노와4리로 집단 이주했다.

1. 곤지머리(混池頭): 안성천변의 나루. 고덕면 동고리 이포진, 현덕면 권관리의 계두진과 연결됐던 나루였다. 용신제를 지내던 마을제당과 평택현의 기우단이 있었다.

2. 황새울들: 옛 대추리와 함정1리 서원말 사이에 형성된 들판.

3. 흑무개들: 도두리벌에 있는 들판. 한국전쟁 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이 간척했지만 2006년 K-6 미군기지 확장으로 수용됐다.

4. 종제비: 1988년 대추리 기우단에 동제(洞祭)와 기우제를 중단하면서 주민들이 세운 비.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76호)에서는 ‘평택시 팽성읍 도두리 지명 유래’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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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팽성읍 대사리’ 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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