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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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YMCA에서 주관한 ‘실버 특강’을 통해 지난날을 딛고 오늘을 살아가며 앞날에 대비하는 슬기를 모은 기회는 실로 축복이었습니다. 게다가 부탁받은 소감문을 쓰기 위해 미처 접하지 못한 강의들까지 부랴부랴 소환하여 듣게 되었으니 예감이란 게 얼마큼은 들어맞는 모양입니다. 지인의 권유로 뒤늦게 합류했으면서도 하나같이 주옥같은 내용물이었기에 귀담아듣게 되었고, 왠지 부족한 필력이나마 쓰임을 받으리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촐한 제 생각의 조각을 풀어놓으며 고명하신 강사님들의 존함을 일일이 거명하지 않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소중한 배움의 장을 여는 데 애쓰신 보이지 않는 손길들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특강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멋진 재능기부로 이뤄지는 시민교육이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본격적인 소회를 밝히기에 앞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일화(episode)가 떠오릅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극단적 외형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마당에 새삼 서슬 퍼런 유신 정국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뜻은 분명합니다. 고인이 난지도를 방문했을 때 한 여인으로부터 느닷없이 초대를 받았더랍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판잣집에서 파리 떼가 뒤덮은 비빔밥을 맛있게 잡수시던 모습이며, 내내 티코와 소나타를 이용하시던 그분의 고품격을 못내 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이 들어가는 일상과 경이로운 창조세계에 감사하며 식지 않는 꿈과 열정으로 꿋꿋이 살아나가되 이해와 소통의 영역을 넓혀가는 경륜을 베푸는 일이 노년에게 주어진 책무로 느낍니다. 하지만 최첨단 디지털 기기를 능숙히 다루는 일은 여전히 무거운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한 단계씩 고지에 오르는 일이 힘들다고 하여 지레 포기해버리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어느 명사의 지적처럼 자동차를 모는 시대에 마차를 타겠다고 고집을 피울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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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기원을 알고 삼권분립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 못지않게 주요한 과업은 무너진 가정부터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정치야말로 소소한 일상의 연장선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현상이 본질을 뒤덮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사안마다 문제의식을 갖고 민주적 절차를 밟아 각종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날카로운 분석과 따뜻한 비판을 마다치 않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수고는 물론 모본을 보이는 일은 요로(要路)를 차지한 직분자들의 몫입니다. 그럴 때 차츰 인간사의 부족한 부분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며 만인이 행복한 사회로 변모한다고 확신합니다. 늘 명심할 일은 공동체부터 챙기는 봉사와 헌신의 실천입니다. 산적한 과제의 기저에는 자격 없는 자들의 무분별한 일 처리가 똬리를 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잠시 문학작품으로 눈을 돌려보면 연신 주목을 받은 염상섭의 <삼대>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과 계층 간의 빈부격차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조선 총독부에서 내선일체를 부르짖는 와중에서도 양극화의 그늘은 사회 곳곳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는 전언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벌써 오늘날의 현안들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참고로 갈등(葛藤)이란 낱말을 독특하게 풀어낸 이가 있었습니다. 기실 칡과 등나무는 식물 세계에서 하등 분란이 없답니다. 오히려 둘이서 다른 방향으로 뻗어가기에 얽히고설킬 까닭이 없다는 주석이었습니다. 각자 갈 길을 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라는 방향 제시입니다. 그런 뜻에서 인간관계의 갈등을 푸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새겼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나로 인해 남이 불편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내기가 각박할수록 양보하는 덕목이 요긴한 이유입니다.

  개인적으로 미국 정치사를 일목요연하게 접한 건 퍽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각종 제도나 법체계를 세우면서 인간의 부패성을 전제한 미국인들의 혜안은 놀랍습니다. 굳이 기독교 세계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만약 성선설이 맞다면 왜 이다지 온갖 범죄가 끊임없이 난무하겠습니까? 연약한 사람의 본성을 헤아릴 때 권력이 주어지면 휘두르게 되어 있다는 전제입니다. 적절한 견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건 그래서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을 헌법에 명시한 것은 당연합니다. 일인 통치의 경우 전제주의나 전체주의로 흘러가는 것은 정해진 길이니까요. 거기서 온갖 불법이 난무하고 횡행하는 터입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흐지부지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델라의 통 큰 용서와 함께 포드의 닉슨에 대한 사면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한 독재는 몹시 안타까운 지점입니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72호)에는 ‘세계시민 의식을 일깨운 시공 - 서로 나누는 지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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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세계시민 의식을 일깨운 시공” 입문한 실버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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