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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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익은 가을이로다. 내내 코로나바이러스에 시달린 올여름은 그나마 무더위가 기승을 덜 부린 편이렷다. 주위를 둘러보니 풀죽은 잎새들이 울긋불긋 치장을 서두르고 있다. 머잖아 생기를 잃고 하나둘 떨어져 여기저기 나뒹굴 참이다. 어김없는 계절의 화답에 나부터 고개를 떨군다. 우주 안에 만상이 있고 문인들은 시심을 일군다. 주제는 넘되 보편적 현상을 간섭한 터다. 문학의 틀에 묶인 미세한 틈새를 엿보련다. 흡인력 지닌 시편일수록 푸근한 본질을 채색한다. 끈질긴 행간에 녹은 어휘에서 함의를 쏘아본 거다. 지지고 볶고 부대끼는 도정에 실개천이 흐른다. 비록 흔들릴망정 강줄기는 수평을 지향한다. 미지의 지평일수록 사람다움에 접점을 맞춘다. 오래된 서정시를 훑고 감득(感得)한 미적 선험의 경계인 셈이다. 부끄러이 교편을 들고 파편적이나마 그 편린에 대해 풀었다. 한문장(漢文章)의 해석력에 더쳐 지레 상흔을 누출하곤 했다. 닦아세워 당대 시류와 후원(後園)을 훔쳐본들 얽힌 고리에 설키기 일쑤였다. 솔찬히 요로(要路)에 숨은 문리(文理)마저 들추기 만만찮았다.
 
   그 와중에 서가의 한쪽에서 소싯적 기록장을 주웠다. 절절히 미래를 불러댄 과거였다. 현세를 직감한 구석일랑 견물생심이거나 언감생심이었다. 뒤적거리니 자질구레한 갈래였다. 쑤석거리다 깊숙이 처박아둔 습작이었다. 거기서 용기를 쌓은 참이리라. 세파에 덧대기로 맘먹었다. 마냥 깜냥이 짧은 탓으로 돌리기는 자존감이 허락지 않았다. 자칫 노출이 아니면 짐짓 누설인 때문이다. 문물을 읽는 눈매야 가히 주체적이기에 그러하다. 근원적 시행을 음유하는 소행이야말로 감상(感傷)이니까 말이다. 화두인즉 창발적 경계라고 치근덕대므로. 이조차 어디선가 베낀 줄기를 지우기 어렵다. 그럴 즈음 내게 회의가 포말(泡沫)처럼 포용했다. 허무의 쪽배가 난파한 때를 소환한 터다. 그리 떠나 십수 년을 돌고 맴돌았다. 현실과 이상의 금을 저울질했다. 표류를 병인인 양 거듭했다. 체념을 담아 관념에 보탰다. 주저앉듯 외딴 섬과 마주했다. 지푸라기를 닮은 삶은 잠정이었다. 노를 저어감이 퇴색했다. 저승행 작심을 굳힌 직후였다. 그때 고요히 떠오르는 잔별과 마주쳤다. 인식이란 이름의 별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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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날 밤을 지새우며 눈물지었다. 그 별무리 아래 엎어져 지난날을 회억(回憶)했다. 아련한 아집에 목매달고 살았더랬다. 매캐한 독선에 최고치를 부여했었다. 나를 뺀 사물에 질시를 일삼았다. 그간 배척한 소행들이 부유했다. 반달을 건너뛴 초승달처럼 나댔다. 보름달을 가린 그믐달처럼 날뛰었다. 되먹지 않은 목불인견을 뒤덮은 건 허섭스레기였다. 흐트러진 논거들을 간추리니 찌꺼기였다. 차라리 모종의 변고에 더 가까웠다. 부분은 몽상이었고 대부분은 위선이었다. 일찌감치 죄악의 씨방에 갇힌 걸 알아차려야 했다. 후미진 골짜기에서 한동안 허우적댔다. 진즉 진흙탕을 뿌리쳤어야 했다. 흑암에서 만난 몽학선생을 떨쳐냈어야 했다. 재빨리 영적 무지를 털어냄이 머쓱했다. 골병든 영혼의 처연한 흐느낌에 줄곧 짓물렀다. 외마디를 외칠 대적이 불가결했다. 천박한 배설마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가까스로 굴혈 속으로 잦아들었다. 무작정 밀린 잠에 푹 잠겼다. 햇발이 채 가시지 않는 모처였을 게다. 까마득한 하늘이 열리길 기다린 광야였다. 정황에 바짝 천착했다.
 
  혼돈의 시각은 더디 사라지는 법이라던가. 배회의 나날은 여드름같이 질겼다. 응당 음습한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혼신에 눌어붙은 떼는 물러설 줄 몰랐다. 무질서한 놈은 날 핏기없는 백치로 치부했다. 애당초 저주스러운 몰골로 인해 태생을 망쳤다는 원한이었다. 이립(而立)하기까지는 꽤나 걸렸다. 불길한 불길에 휩싸인 채였다. 얼룩진 인고의 빚더미를 떠안아야 했다. 거둬들일 담보이자 빛바랜 문서였다. 요절한 동무에게 좌초당한 몫이었다. 무덤에 싹튼 뭇 혼들의 불신이었다. 하늘을 가리켜 내뱉은 팽배요 가당찮은 관영(貫盈)이었다. 무관심한 혼절에 극한으로 치닫던 형세였다. 뒹굴다 만 세포들이 머뭇거렸다. 뒤척거리다 핑곗거리에 넙죽 기댔다. 우회가 아닌 전환을 택일했다. 서슬 퍼런 우매는 심장을 파고들었다. 서슴지 않고 괴리를 저장했다. 사로잡힌 심연의 극심한 기갈이었다. 솟아오른 임계점에 내몰렸다. 심상을 왜 주체못할까. 먹먹한 양날의 검을 움켜쥘라치면 극구 휘두를 태세였다. 앞뒤 잴 겨를은커녕 막막한 극점이었다. 미로의 끝점에 휩싸였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60호)에는 ‘내 영혼의 시적 고향 - 길을 잃고 헤맨 지점’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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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내 영혼의 시적 고향:목적 없는 삶의 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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