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최초 공립교육기관 진위학교 역사는 평택교육 역사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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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위공립국민학교 제31회 졸업사진(1943) <출처 = 평택시사> 
 
◆ 공교육기관(진위초등학교)
 
1. 공립진위보통학교
 
 1906년 ‘보통학교령’에 따라 진위공립소학교를 ‘공립진위보통학교’로 개명했다. 수업연한도 5~6년이 4년으로 단축됐고 일제는 친일교육을 강화했다. 교사의 관명을 ‘훈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일본인 훈도를 교감으로 겸임 발령해 일어를 가르치며 일반 교수법 지도와 학교관리를 맡게 했다.
 
 당시 공립진위보통학교 교원으로 1908년 융희 2년 1월 28일 교원 정범시가 본과 훈도 판임관 3등으로 임명됐으며 부교원 이필선이 부훈도 판임관 5등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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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위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2000.4.23) <출처 = 평택시사> 
 
2. 진위공립보통학교
 
 1911년 8월 22일 전문 30조로 된 ‘제1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됨에 따라 1911년 9월 1일 교명을 ‘진위공립보통학교’로 개칭하고 전 교원을 신 학칙에 의거 임용했다.
 
 진위공립보통학교는 정부보조가 없어 군수와 도민 협조로 운영했으며, 교육시설이 미비하고 정식교사가 부족해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가정의 자녀들만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수업료를 내지 못해 340명의 학생이 퇴학을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래된 생활기록부 원본에 1911년 4학년 졸업생 이용옥은 당시 나이가 14살이었으며, 입학 전에 관립 ‘미동보통학교’를 다녔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과목은 수신·국어·한문·조선어·산술·지리·역사·도화·체조·창가 등을 배웠고, 학생들은 주로 보통학교 입학 전에 서당·사숙·사립이나 관립학교를 다니던 학생으로 현재 취학 연령보다 4~5살 정도 많았다. 성적 평가는 총점·평균·석차 등으로 기록했고 신체발달 상황이나 출석 일수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당시 교육내용은 일어를 국어로, ‘조선어 및 한문’을 제외한 전 교과를 일본어로 편찬해 사용했다. 당시 식민지교육 기본정책은 식민지의 경제적 수탈과 근로착취에 이용할 수 있는 기초적인 실무교육이었다. 1914년 3월 ‘진위공립농업학교’가 부설돼, 1918년 3월 23일까지 5년간 2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다가 폐교됐다.
 
 진위공립보통학교는 진위지역은 물론 오산·용인 등 지역 학생들도 통학했으며, 학생들 중에는 나이 많은 학생도 상당수 있었다. 1911년 11월경 학교를 다시 봉남리 진위군청 내 객사로 이전하게 됐다. 1913년 지금 위치에 20평 규모의 목조 단층교사를 신축 이전해 개교 이래 13년 만에 학교시설을 갖춘 독립된 교사를 마련했다.
 
 학생 수 증가로 교실이 부족해 1928년 3교실 75평을 증축하고 1930년 다시 4교실 100평을 증축 했다. 최초의 공립교육기관으로 진위학교의 역사와 변천은 평택교육의 역사를 입증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58호)에서는 ‘일제강점기 평택의 사립 교육기관’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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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일제강점기의 평택교육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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