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향촌사회에서 마을 기본단위로 설립한 사립 초등교육기관

진위면 가곡리·봉남리·도일동, 포승면 내기리·방림리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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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당(단원풍속화첩)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 서당
 
 서당은 향촌사회에서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돼, 마을을 기본단위로 설립하는 사립 초등교육기관이다. 진위면의 가곡리·봉남리·도곡동·도일동, 포승면의 내기리와 방림리 등에 다수의 사족(士族) 집단이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있어 서당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평택지방의 서당은 사족집단이 가문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독서당이나 사숙(私塾), 그리고 훈장이 직접 설립한 자영서당이었다. 해방 전후 자영서당이 있었던 현덕면 신왕리의 경우 설립자는 마을에서 사서(四書)를 읽은 구(舊)지식인이었고, 교과목은 천자문과 통감이었다. 서당의 입학 연령은 초등교육을 받은 13~14세 아이들부터 20세에 가까운 청소년들이었다.
 
1. 숙성리(宿城里) 한문서당
 
 1914년 오성면 숙성리에 서당이 개설되고 한문교육과 항일투쟁교육을 실시했다. 수학한 학생들이 1919년 3·1독립운동 때 군중들을 봉기시킨 주동 인물들이라고 한다. 서당을 설립한 인물은 미상이다.
 
2. 지제리(芝制里) 한문서당
 
 1918년부터 7년간 평택읍 지제리 우기종(禹基種)의 사랑방에 서당을 설치했다. 우기종은 한학(漢學)을, 송탄읍 장당리 이 모 씨는 한학과 산학을 가르쳤고, 이 중 사서오경(四書五經)까지 배운 학생도 있었다. 학생 수는 약 20여 명이었다.
 
3. 양교리(梁橋里) 한문서당
 
 1923년부터 8년간 오성면 양교리 황로식(黃魯軾)은 사랑방에 서당을 차리고 학동 10여 명을 가르쳤다.
 
4. 신대리(新垈里) 한문서당
 
 1925년부터 8년간 병남면 신대리 호택수가 사랑방에 서당을 개설하고 10여 명에게 한학을 가르쳤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56호)에서는 ‘일제강점기 평택의 공교육기관’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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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일제강점기의 평택교육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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