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독립운동 차단 위한 국경지역 일제 사단 병력 증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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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일보 (1924. 7. 3자. 1면)
 
 평택 출신의 민족지도자 안재홍 선생이 쓴 귀중한 신문자료가 발굴됐다.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회장 강지원)는 최근 서울 한 고서점에서 1924년 7월 3일자 ‘시대일보’를 입수하여 2면 1단에 민세가 쓴 ‘아사(餓死), 압송(押送), 증사(增師)’라는 원고가 실려 있음을 확인했다.
 
 이 글은 천관우 선생이 정리한 ‘안재홍선집’ 1권에 실려 있으나 원자료는 이번에 처음 찾았다.
 
 발굴된 시대일보에는 “전 조선 도처에 이러한 굶주림에 빠진 인민으로서 채웠다. 남북만주나 서시베리아나 또는 일본 각지에까지 이러한 기아에 쫓기는 조선인 대중이 있다. 그들은, 그의 있는 곳마다 훌륭한 밭과 논이 있으면서, 혹은 찻길로 혹은 뱃길로 몰려가는 수십만 명의 미곡을 날라 보내면서도, 그 자신의 추위와 굶주림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안재홍 “아사, 압송, 증사” / 시대일보, 1924년 7월 3일자 2단)”라고, 당시 굶주리는 조선민중의 고난과 일제의 강압통치로 인한 조선인의 체포·구금·압송·처형의 비참한 현실, 독립운동 차단을 위한 국경지역 일제 사단 병력 증설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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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일보 안재홍 글 (1924. 7. 3자. 2면 1단)
 
 민세는 1919년 11월 대한민국 청년외교단 사건으로 대구 감옥에서 1차 옥고를 치르고 1922년 6월 출옥했다. 이후 고향 평택에서 몸을 추스르고 1924년 3월 최남선이 창간한 시대일보에 정치부장 겸 논설기자로 참여했다. 당시 4면에 2만부를 발행한 시대일보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국내 3대 언론사였다. 이후 경영의 어려움으로 중외일보, 중앙일보, 조선중앙일보 등으로 신문명이 바뀌었다가 1937년 11월 일제의 탄압으로 폐간됐다.
 
 시대일보 시절 민세는 “살기에 쌓인 문화정치”, “아아, 그러나 그대는 조선 사람이다”, “사막으로 향하여 가는 조선인” 등 다수의 논설을 발표 일제 식민정책을 비판하고 민중 계몽에 힘썼다. 그러나 시대일보는 그해 7월 보천교의 기관지로 변질, 내부 반발이 이어져 휴간을 하다가 9월 민세는 김형원, 김정진 등과 함께 퇴사했다. 이어 곧바로 이상재를 사장으로 신석우가 혁신 조선일보를 경영할 때 이사 겸 주필로 초빙 본격적인 언론활동을 하게 된다.
 
 황우갑 안재홍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아주 귀중한 자료가 발굴돼 기쁘다. 불과 6개월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대일보는 민세가 언론활동을 시작한 곳이다. 민세는 이 시기 글에서 순도자(殉道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 해외 망명 대신 국내에 남아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부단한 비판과 민중계몽을 통해 절대독립의 꿈을 이루겠다는 언론인 민세의 고뇌가 묻어나는 글”이라며 “앞으로도 민세의 분야별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자료수집으로 고덕국제신도시 안재홍기념관이 충실하게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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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기념사업회, 안재홍 선생 글 실린 시대일보 원본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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