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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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어귀에 있는 ‘알피스(Alpis) 예배당’에 들렀다. 25유로짜리 벽돌 한 장을 기증하고 다과를 들며 귀담아들은 필립 야곱 스펜서(본 교회 장로이자 FES 전 교장)의 강의는 유익했다. 귀 있는 자가 귀를 여니 말씀 중심의 설교, 성도를 가족처럼, 실질적 소망을 보면 교회는 부흥한다는 요지였다. 정부 보조를 받는 교회는 급속히 쇠퇴하는 반면에 십시일반 교인들의 헌금으로 운영하는 교회는 날이 갈수록 흥성한다는 보고서였다. 협소한 공간을 늘려 짓는 사역도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기도하며 나아갈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그나저나 독일을 세 번째 여행하며 뇌리에 박힌 풍광 가운데 하나는 우리네 육송을 빼닮은 솔숲이다. 불그죽죽한 소나무(pine tree)를 쳐다보노라면 흡사 자매지간을 보는 듯 정겹지만 정작 독일만이 지닌 독특한 풍광은 이파리 없는 나뭇가지에 기생하는 겨우살이(mistletoe)다. 한국의 산야 같으면 거기 눌어붙은 영양가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탐욕의 손길들이 칼춤을 추겠건만 감히 건들지 못하는 새집처럼 늘 그대로이니 그저 부럽기 그지없다. 그 앙상한 가지에 깃들인 도톰한 정신은 무엇일까? 공공재를 아끼는 마음가짐일 게고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정직성일 테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청의 문화가 나무처럼 깊이 뿌리 내린 참이다. 뛰고 나는 집값을 빌미로 님비현상이나 핌피현상을 부추기는 천박함은 적어도 성도라면 저지르면 아니 될 생활형 범죄라고 단정하고 싶다.  배려 없이 상생 없고 질서 없이 전진 없다는 게 평소 내 주장이다. 루터가 제창한 기독교 경건주의의 실뿌리가 땅속 깊이 자리를 잡은 독일이 한없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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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이틀링겐(Reutlingen)은 12만 여명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 에하츠 강변에 눈비와 우박이 뒤섞여 내렸다. 한때 가톨릭 성당이었다가 개신교 예배당으로 바뀐 중세풍 교회를 방문했다. 1499년 제작된 제단을 없애는 등 교황의 흔적을 얼마큼 지웠는지는 몰라도 일부 성상이나 성물은 그대로여서 단박에 느낄 만큼은 아니었다. 장로 같은 사찰 집사님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나와 설교 준비실을 겸한 리더들의 회의 장소를 흔쾌히 공개해 주었다. 성경책과 시계가 놓여있고 탄산수 두 병이 전부일 만큼 소박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중후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 소리가 뭇 심금을 울렸다. 1431년 준공 당시 예배당 설계도를 살펴보는 등 귀한 시간을 가졌다. 잠시나마 하늘이 맑아진 사이 로이틀링겐 거리를 걷다가 진귀한 곳을 발견했다. 기네스북에 세상에서 가장 좁은 건물 사이로 올라있다는 틈새를 애써 지나가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똑바로 걸어서는 빠져나가기 힘들고 옆으로 서서 비스듬한 게걸음 자세를 취해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렇다고 옷자락이 벽에 쓸려야 지날 수 있을 만치 곤혹스러울 정도는 아닌 걸 감안하면 사실 정해진 등록절차가 까다로워 그렇지 우리네 시골집 골목을 작정하고 찾아 헤매다 보면 그 옛날 이보다 더 비좁은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어디서든 아는 자가 먼저 보는 참이고 제대로 보는 자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순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괴테(1749~1832)의 명언이 떠올랐다. 보이는 만큼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수 있다는 설득에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라는 걸 체득하기 직전이었다. 고난이 스승이라는 가르침과 더불어 유능한 사람일수록 배우기에 힘쓰듯이 열성을 지닌 꿈은 반드시 빚이 아닌 빛으로 다가온다는 그의 일갈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독교 학교들의 교육 활동에 힘을 보탠 단체가 카를스루에 지방에 있었으니 <기독학교연합회(Verband Evangelischer Bekenntnisschulen)>였다. 독일 복음주의 신앙을 바탕으로 고백학교 시스템의 아이디어를 내는 데 중점을 두고 4만 명이 넘는 학생이 다니는 150개 이상의 기독교 학교와 유치원을 돕는 운영기관임에도 내부가 비좁아 부득불 강의실로 이용할 만한 카페로 장소를 옮겨야 했다. VEBS의 전 대표이던 마이어 씨는 목사 출신으로 교육에 관심이 지대하여 2006년에 VEBS 대표를 맡게 되었는데 내일 방문하게 될 Aloys-Henhofer-Schule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오래 섬겼다고 했다. 성경에 나타난 교육 관련 구절을 뽑아 새로운 교육방법을 만드는 일을 맡고 있으며, 다섯 명의 직원이 매일 아침 큐티로 일과를 시작할 만큼 신실한 신앙 태도를 갖고 있었다. 빗속을 15분가량 걸은 끝에서야 강의가 가능한 곳을 찾았고 피자를 들며 젊은 크리스천 CEO의 준비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48호)에는 ‘독일 교육 탐방기 : 조직을 살리는 리더십’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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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독일 교육 탐방기:교회를 품은 평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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