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시가 있는 풍경.jpg
 
권혁재 시인
 
 
달빛이 구멍 난 신발코로 들락거릴수록
밤은 더 무기력했고
허기는 개머리판에 얹힌 손을
부르르 떨게 했다
손에서 미끄러진 총이
고사목 가지를 부러트리며
밭으로 떨어졌다
패인 밭고랑에서 불에 타지 않은 지슬이
화약 냄새를 품은 채
불안한 씨눈을 깜박거리며 까맣게 웃었다
밤이 오고 다시 찾아온 적막
사람들이 하나 둘 지슬밭으로 내려와
아린 지슬을 씹어 먹으며
내 년도 농사를 걱정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숱한 이야기들이
텅 빈 밭에서 지슬꽃으로 져버린
애기무덤들 위로 유성처럼 떨어졌다
마지막 하지 지슬이 바닥나면서
지슬밭은 마을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 지슬: 감자의 제주도 사투리.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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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지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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