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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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덧붙여 한사코 개신교를 지향한다며 짙은 로만가톨릭의 냄새를 풍기는 건 왜일까? 고린도 지방에서 창기와 구별하던 면사포가 그렇고, 울타리를 두르고 살아가는 단절의 모양새가 또한 그러하다. 필자는 천주교에서 걸어온 배교의 역사에 관해 그 누구보다 뼈아프게 느끼기에 드리는 고언이다. 약 500년 전(1522년)에 행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근거해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면 프로테스탄트로 불리는 확실한 영적 설정은 있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공동체가 불신자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생명수의 통로라면 이제라도 이스라엘이 아닌 세상을 품을 결단을 내려야 마땅하다. 개신교를 표방하며 수녀원과 흡사한 독신 여성 공동체가 성경에 부합하는지도 깊이 검토할 부분이다. 물론 사도 바울의 삶을 잘 알고 개인별 특성을 부정하지는 아니하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 생육하고 번성하라며 가정을 허락하셨고, 목숨이 붙어있는 한 주신 달란트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게 성도의 사명일진대 담장을 치고 그리스도를 가리켜 정치적 메시아 운운하며 자신들의 도그마로 무장하는 게 과연 옳은 길인지, 무슨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심히 의문이다. 어쨌거나 가이드로 수고하며 문서 출판 사역을 감당하는 암브로시아 한국인 자매가 이사야 57장 15절의 말씀처럼 주님이 보시기에 마음이 겸손한 의인 열 명 중 하나이기를 소망하면서 조만간 한국의 별무리학교 마을을 방문하신다면 기회를 보아 여러 질문거리를 마련해두기로 했다. 나아가 마음이 동한다면 깊은 속 얘기도 터놓고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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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토반이 막혀 늦어진 로이틀링겐(Reutlingen) 소재 <자유복음주의학교(Freie Evangelische Schule)>는 1973년 개교한 가장 오래된 사립 기독학교였다. 필자가 반평생을 봉직한 한광학교가 1955년에 설립된 걸 헤아리면 복음 선포의 연륜만큼은 일천한 편이다. 그렇다고 때가 차매 성령이 임하시면 일순간에 구원의 역사가 벌어진다는 걸 몰라 던지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교직원 전원이 성도인데 반해 한광재단 4개 학교에 근무하는 300명 가운데 과연 몇 %나 거듭났는지는 발설 불가. 재학생이 1,000명을 웃도는 데도 김나지움을 택하지 않은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소망을 안겨주고픈 주님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 모든 입학생들은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인간의 기본 가치에 대한 명확한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맘에 쏙 들었다.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한다는 서약도 필수다. 그런데도 학부모 중 약 70%는 비신자란다. 아이가 변하는 걸 보고도 보내지 않는 바보는 없다는 게 다였다. 흩뿌리는 빗속을 헤치고 참관한 수업은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심부름하는 개(school dog)를 학습 도우미로 활용하고 있었다. 교수법적으로 관계(relationship)를 우선시하며 동물 사랑을 실천하는 나름의 교육 방식이려니 생각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퀴즈 출제 요구를 받았다. 반사적으로 응한 건 성경을 지은이는 누구일까요? 재밌게도 곧장 ‘모세’라고 답한 아이가 있었다. 그밖에 바울이나 노아를 댄 아이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일러준 정답은 하나님의 영감. 물론 40명에 이르는 사람이 약 1500년에 걸쳐 기록한 걸 굳이 설명할 수준은 아니었다. 나이에 비해 경청할 줄 알았고, 질문을 소화하는 자기 주도적 참여가 돋보인 수업이었다.
 
  융숭히 대접받은 점심은 독일에서 맛본 현지식으로서는 최고 품질. 알고 보니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성의껏 준비한 엄마 밥이었다. 구수한 마카로니에 신선한 샐러드가 먹을 만했고 무엇보다 저염식이어서 좋았다. 향긋한 사과 둘에 오렌지 하나를 해치운 이는 나밖에 없었다. 그보다 일행을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학부모들에게 당당히 자원봉사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였다. 수업료는 한 달에 10만 원이 좀 넘는 수준. 양질의 교육에 학비가 저렴한 건 그래서였다. 부모와 교사 사이에 선의의 신뢰와 평화의 관계를 구축하려면 학교와의 공개 토론에 기꺼이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 요체였다. 그랬을 때 아이들이 좋은 클래스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조언을 잊을 수 없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 중에는 무슬림 가정도 있다는 말에 대뜸 수긍이 갔다. 구원이 예수님과 나의 1:1 관계이듯이 학습 또한 교사와 학생의 1:1 관계로 푸는 열쇠를 쥐고 있었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47호)에는 ‘독일 교육 탐방기 : 교회를 품은 평화마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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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독일 교육 탐방기 : 교리와 복음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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