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평택에 해당하는 진위·양성 모두 수원진관에 속해
 
 진위현, 수원부 진관 관할 아래 별중영에 소속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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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동지도-진위현 <출처 = 평택시사> 
 
 평택지역은 조선전기에는 경기도의 진위(振威)·수원(水原)·양성(陽城)과 충청도의 직산(稷山)에 속해 있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경기도의 육군은 모두 4개 진관으로 편성됐다. 광주목사(廣州牧使)가 첨절제사(僉節制使)를 겸하는 광주진관, 수원부사(水原府使)가 첨절제사를 겸하는 수원진관, 양주목사(楊州牧使)가 첨절제사를 겸하는 양주진관, 장단부사(長端府使)가 첨절제사를 겸하는 장단진관이다. 지금의 평택에 해당하는 진위·양성은 모두 수원진관에 속했다. 진위현령(振威縣令)과 양성현감(陽城縣監)이 모두 절제도위(節制都尉)로서 소속 지방군을 지휘했다.
 
 충청도의 육군도 모두 4개 진관으로 편성됐고 충주목사(忠州牧使)의 충주진관, 청주목사(淸州牧使)의 청주진관, 공주목사(公州牧使)의 공주진관, 홍주목사(洪州牧使)의 홍주진관이 있었다. 직산은 청주진관에 소속돼 직산현감(稷山縣監)이 절제도위로서 소속 지방군을 지휘했다.
 
 조선후기에는 지금의 평택이 충청도 평택과 경기도 진위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속대전』에 의하면 경기도에는 모두 6명의 영장이 있었고 모두 수령이 겸임했다. 광주부윤(廣州府尹)이 전영장(前營將)을, 남양부사(南陽府使)가 좌영장(左營將)을, 양주목사(楊州牧使)가 중영장(中營將)을, 장단부사(長端府使)가 우영장(右營將)을, 죽산부사(竹山府使)가 후영장(後營將)을 맡고 있었으며, 수원부사(水原府使)가 별중영장(別中營將)을 맡았다. 진위현(振威縣)은 수원부 진관 관할 아래의 별중영(別中營)에 소속됐다.
 
 한편 충청도에는 5개 지역에 전임(專任) 영장이 파견돼 소속 진관을 관할했다. 전영장이 홍주(洪州)에, 좌영장이 해미(海美)에, 중영장이 청주에, 우영장이 공주(公州)에, 후영장이 충주에 파견됐다. 단 해미에는 별도의 영장이 파견되지 않고, 무신(武臣)으로 파견된 수령이 영장을 겸임했다. 평택은 홍주 진관 관할의 전영(前營)에 소속돼 있었다. 평택이 포함된 전영 소속의 군사는 마병(馬兵)이 4초(哨), 속오군(束伍軍)이 25초가 있었고 표하군(標下軍)이 286명 있었다. 마병은 기병(騎兵)이며 속오군은 보병(步兵)이었다. 표하군은 본부의 각종 인원들로, 대부분이 비전투원으로 구성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37호)에서는 ‘평택의 군정 ②’이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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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조선시대 평택의 군정’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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