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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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나마 모든 뱃길이 떼주강으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각 나라의 국기를 늘어뜨린 관공서가 보였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을 비롯해 성조기, 유니온잭, 일장기는 보였으나 태극기는 없었다. 평소 붐빈다는 젊음의 거리에는 왠지 젊은이들은 없고 어설픈 자본주의의 몸짓들이 있을 뿐이다. 간간이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호객 행위. 카드를 파는 옆으로 2층 투어버스가 지나갔다. 템포가 빠른 음악을 들으며 자유의 거리로 향했다. 불란서 샹젤리제 거리를 흉내냈다는 곳. 보도 양쪽으로 플라타너스를 심어 정성껏 가꾼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다소 뜬금없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포도주를 거래하면서 양국 간에 면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포르투갈의 경제가 되살아났다는 주장이 그것. 반면에 그렇게 급속도로 친밀해지다 보니 어느 틈에 포르투갈의 경제가 스페인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수준 높은 해설을 듣노라니 그동안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추세를 조금은 안다고 자부했던 나의 지식체계가 금세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언뜻 사회 시스템이 허술해 뵈는 포르투갈에도 나름 철저한 구석은 있었다. 버스운행의 경우 2시간마다 반드시 30분과 15분으로 나눠 45분을 쉬어야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영업용차량에는 타코미터를 장착해 제출을 의무화했다. 그러니 사고율이 뚝 떨어질 수밖에. 코르크나무를 구경하며 학제에 관해 들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묶은 8년의 의무교육 기간을 마치면 가업을 잇거나 직업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직업전선으로 나간단다. 대졸자 비율은 20% 정도. 실력은 뒷전인 채 학력만 높이려는 우리 사회보다 몇 배는 건강하다. 실태가 이러함에도 한국인을 보면 영화같이 산다며 부러워들 한다니 어이가 없다. 배움이 짧아 사리판단에 어두운 거다. 숱이 많은 소나무에 둘러싸인 성채는 대부분 방어용이었다. 회색빛을 띠는 올리브나무 밑에 한 무리의 양떼가 풀을 뜯고 있었다. 좌우에는 와인용 포도나무가 자라나고 가느다란 유칼립투스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꿀나무 마누카가 무성한 건 외려 신트라보다 낫다. 빨랫줄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처럼 종일 수다를 떠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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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녘으로 갈수록 산천초목은 푸르렀다. 한결같이 머리가 짧은 건 실생활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슬기로움. 시나브로 차창 밖으로부터 온기가 스며드나 했더니 볏짚이 보이고 무논이 나타났다. 하지만 드넓은 농토는 밀밭 일색. 그 위로 몇 마리 갈매기가 날아간다. 바다가 가깝다는 징표. 풍요를 구가하는 초지의 풍광에 자연미가 묻어난다. 투박하고 질박한 데다가 소박미까지 갖춘 3박자 풍광. 신기하게도 뉴질랜드에서 만났던 초목들과 흡사하지만 거기가 세련미 넘치는 미인이라면 미안하지만 여기는 명백한 박색에 속한다. 차창을 스치는 늘어선 나무들. 농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코르크나무의 껍질에 의존한다고 했다.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상회한다니 놀랍다. 20년을 키우면 채취를 시작하는데 벗겨낸 자리에는 붉은빛이 감돌아 얼핏 핏자국처럼 보였다. 대형 스프링클러를 돌리는 널따란 초원에 간간이 보이는 숲은 낙농국의 색다른 면모. 문제는 ‘씨에스타’, 즉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낮잠을 즐기는 생활문화가 이들의 바쁜 발목을 잡고 있었다.
 
  터미널을 겸한 휴게소에 들렀다. 크고 널찍하나 구조를 괜히 흐트러뜨렸다는 인상이 짙다. 개인이든 사회든 생활공간의 동선을 보면 합리성의 여부를 안다는데 이건 불합리한 쪽이다. 먹고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너무 너저분하다. 더는 볼 일이 없어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라는 풀꽃을 화면 가득 카메라에 담고서 버스에 올랐다. 재밌게도 고속도로를 지키는 전봇대는 유칼립투스를 깎아 세웠다. 지지난해 호주에서 보고 다시금 만나니 반가웠다. 나지막한 능선이 시선을 사로잡은 가운데 온몸에 달라붙은 듯 평원을 타고 산야지대로 올라가는 리무진.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도통 터널이란 없다. 고성을 개조한 농가는 여태 본 풍치 가운데 으뜸. 하지만 워낙 인구가 적다 보니 인적이 드물다. 그렇게 얼마간 늪지대가 이어지더니 그리 크지 않은 강이 끼어 흘렀다. 이틀간 머문 포르투갈을 향해 다 같이 ‘오브리가도’를 입술에 실어 날렸다. 점점 지중해로 다가가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잔잔하다. 다들 짧은 기간이나마 정들었던 포르투갈을 떠나며 내심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37호)에는 ‘과음을 경계함 - 잠언에 적시한 재앙’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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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포르투갈의 풍광 : 수더분해 정겨운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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