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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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이 돌아본 곳은 ‘에덴동산’.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명명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세계인 가운데 짐짓 시간을 내서 여행을 떠나는 자가 고작 2%에 지나지 않는다더니 우리가 쓰는 외래어에 포르투갈어가 여럿 있다는 설명이었다. ‘빵, 따봉, 베란다, 우루사’가 그것. 필자의 상식에 타바코(tobacco), 즉 500여 년 전 담배를 건넨 진앙지는 이 땅이었다. 인류의 공적을 왜 들여놨는지는 차후에 논할 일이고, 일본어로 알고 있는 ‘덴뿌라, 아리가또오’의 어원 또한 포르투갈어였다. 헝가리와 더불어 앞을 다투는 난폭운전이 이곳 산물이라는 언질에서는 추한 동질감마저 느낀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 낀 한국의 경우 그로 인해 사람을 자꾸 조급한 성정으로 몰아간다는 말에도 별다른 이의는 없지만,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을 볼라치면 기실 의외에 속한다는 느낌이다. 포르투갈의 위치상 미묘한 지정학적 상황이 빚어지기는 쉽지 않아 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후유증을 두고 대뜸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게 얼마를 돈 뒤 차에서 내려 잠시 시가지를 산책하니 출출해졌다. 점심 메뉴는 바깔라우. 가늘게 채 썬 대구를 넣어 요리한 비빔밥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내 입맛에 들어맞았다. 하긴 인도처럼 자극적인 향신료만 뿌리지 않는다면 현지인이 먹고 사는 음식을 기피할 이유란 없을 터.
 
  이제 남은 곳은 마리아가 발현했다는 파티마성당. 영어로 된 팻말 ‘Pick up your Ticket’을 따라 접어든 진입로는 널리 아름다운 길로 알려진 고속도로였다. 간간이 녹슨 풍차가 보이고 쓸쓸히 서있는 예수상이 눈에 띄었다. 널따란 초지며 키 작은 포도밭에 올리브나무가 줄지어 나타나는 길에서 만난 싱그러운 산죽 군락은 늘 필자를 사로잡는 식물 중 으뜸. 아쉬운 건 이정표가 온통 포르투갈어뿐이어서 도통 알아볼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차선에 화살표를 겹쳐 그린 게 특이하고, 키 큰 사이프러스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공동묘지는 꽤 이국적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풀을 뜯는 양떼며 천연의 벌꿀을 딴다는 마누카에 가늘고 긴 미루나무까지, 적이 위험해 뵈는 철탑 밑 소떼를 뺀다면 어딘가 뉴질랜드와 흡사한 데가 있긴 하다. 물론 국토를 가꾼 정교함이나 세련미에서는 격차가 나지만. 평탄한 지대를 뚫고 흐르는 강물 빛은 방금 전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듯 짙은 흙탕물이다. 거기서 북쪽으로 갈수록 제법 산세가 있었는데 언뜻언뜻 바위틈으로 보이는 적토는 마치 마블링이 선명한 한우고기의 살점을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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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티마성당으로 내닫는 길에 장황한 해설이 이어졌다. 이들에게 ‘파티마(Fatima)’야말로 정신적 지주 그 이상이란다. 달리며 듣는 3F의 중심에 파티마가 위치했다. 민속 음악을 뜻하는 ‘파두(Fado)’와 ‘풋볼(Football)’이 이네들을 지탱하는 3요소. 예수님으로 채워야할 절대공간에 엉뚱한 것을 눌러 담아본들 갈급한 심령이 되살아날 리 없다. 우산을 받치고 버스에서 내리니 한눈에 거대한 광장. 일찍이 여의도광장을 빼고는 이만한 공터를 본 적이 없다. 추적추적 내리던 빗물이 진눈깨비로 바뀐 가운데 공덕을 쌓느라 무거운 배낭을 걸머지고 걸어온 자가 있었다. 덥수룩이 자라난 수염으로 보아 멀리서 출발한 게 틀림없다. 을씨년스런 마당을 가로질러 걷다 보니 매캐한 향불이 콧속을 찌른다. 우습게도 불상 대신 마리아상을 앞에 놓고 비는 군상들이 있었다. 역한 기운을 물리치며 계단을 오르니 다행히 추위를 피할 만한 큰 문전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미사를 드리고 있어 왠지 눈치가 보였다. 얼마간 뒤에서 서성거리다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 몇 자 기록을 남기고 나와 버렸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다녀가다. -趙河植, 韓銀淑-” 이를테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이 아니 계시는 소굴을 빠져나온 터. 성전이란 건물이 아닌 흩어진 성도를 지칭하는 개념이지 단순히 처소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자는 영혼을 뒤로하고 네오클래식 양식의 거대한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내친김에 옆쪽에 늘어선 유흥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미개발 지역이었다는데 온갖 성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번듯한 호텔과 모텔뿐인 보도를 걷다가 상가 골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다시금 파티마 마당으로 들어왔다. 아직 시간이 남아 내키지 않아 하는 아내를 두고 으스스한 지하로 내려가니 큼지막한 공간이 있었다. 여러 개의 성당에 전시관까지 두루 갖춘 곳. 가이드가 왜 진즉 알려주지 않았을까 갸우뚱하는 사이 모일 시각이 되고 말았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35호)에는 ‘포르투갈의 풍광 : 바스쿠다가마가 묻힌 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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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포르투갈의 풍광 : 파티마에서 만난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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