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삼국시대부터 둔전병의 진법연구 및 전투력 향상 위해
 
 
평택시사.jpg
▲ 씨름(소사벌 단오제) <출처 = 평택시사>  
 
 기(旗)싸움은 마을과 마을의 두레농악대가 논을 매기 위해 풍물을 치며 길을 가다 길에서 만나거나 정월 명절을 맞아 마을의 두레농악대가 서로 모여 기세배(旗歲拜)를 올릴 때, 대동(大洞)의 농악대가 자신의 마을을 과시할 때 상대방의 농기(農旗)에 달려들어 꿩 장목을 뺏으려고 서로 다투는 민속놀이다. 기싸움을 ‘두레싸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을마다 두레조직이 있고 두레조직에는 대개 농악대가 있으므로 두레와 농악을 동질로 보기 때문이다.
 
 기싸움은 삼국시대부터 둔전병(屯田兵)들의 진법연구와 체력증진 혹은 전투력 향상을 위해 서로 상대방 기의 상단부에 꽂힌 장목을 빼앗는 경기를 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그러나 둔전병 제도가 폐지되면서 군악(軍樂)이었던 농악이 그대로 마을의 농사악(農事樂)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기싸움이 한창 성행할 때는 마을마다 두레농악이 조직돼 있었다. 두레성원들이 논을 매기 위해 이동할 때 서로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 서로 농기의 기수(旗首)를 숙여 배례를 올린다. 그러나 누가 먼저 숙이느냐에 따라 상기(上旗)와 하기(下旗)를 가늠하기 때문에 서로 상대방의 기에다 대고 숙이라고 고함치다가 급기야 기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것이다.
 
 처음 기의 서열을 정할 때는 어느 마을의 농악대가 먼저 결성되었는가를 따진다. 마을마다 농악대와 농기(農旗)가 있고 농기는 곧 그 마을의 상징이기 때문에 농기를 모로 눕히거나 훼손시키면 마을에 불상사가 생긴다 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두레가 먼저 결성되었다 해도 나중 생긴 마을에 지체 높은 양반이 살고 있으면 그 마을의 기가 상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13호)에서는 ‘아이놀이 - 거북놀이’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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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민속놀이 -기(旗)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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