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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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편없이 일그러진 언필칭 성지(?)를 뒤로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영락원’을 찾아갔다. 젊디젊은 시절 인적이 드문 청정한 언덕배기에 머문 때가 있었다. 그때 교감을 나누던 정 목사님은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 나는 그 분의 묘지를 캐물었다. 쓸쓸한 분묘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누구든 한 번은 죽는 마당에 그 영혼의 처소가 궁금할 뿐 무슨 말을 보태랴. 꼭 보고픈 건 따로 있었다. 따뜻한 숙식을 해결하며 신세졌던 최씨 아줌마 댁이었다. 벌써 두 노인은 돌아가셨고 허름한 집마저 헐리고 없었다. 행여나 누가 알아볼세라 꼭대기에 위치한 낡은 교회당 마당을 잠시 들렀다가 바삐 빠져 나오며 흘끔 눈길을 준 곳은 그 맑던 호수. 이제는 부풀어 오른 녹조를 이기지 못한 채 부쩍 오염의 강도를 더하고 있었다.
 
  조심스레 좁다란 저수지 둑을 지나 좁은 굴다리를 이고 건너편 비포장 길을 타고 올랐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꽤나 멀었다. 이윽고 나타난 ‘마애삼존석불’. 오랜 기간 서산 지방의 상징처럼 굳어져버린 불상이다. 그래서인지 여태껏 신비한 미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데, 입간판을 보니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는 없는 기이한 구조의 마애불상이라고 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도 빗방울 하나 맞지 않는다나 뭐라나. 하여간 흡사 석굴암처럼 햇빛이 비치는 방향을 따라 웃는 얼굴이 달리 뵌다는 백제의 그 미소는 어디로 갔을까? 시방은 우중충한 그늘에 덮여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서있는 것 같아 되묻는 말이다. 연신 바위에 새긴 불상 앞에 절절 매는 사람들. 정성껏 불전함에 시주하고 소원성취를 비는 모습을 보노라면 솔직히 심란하다. 말도 못해 듣지도 못해 인격도 없는 석불에게 무슨 능력이 있기에 저리들 간절히 빌까 싶어서였다.
 
  그러는 사이 시계는 벌써 이른 열 시를 가리켰다. ‘서산목장’으로 향했다. 흔히 JP라 불리는 모씨의 소유였다는데 지금은 누구의 손으로 넘어갔을까? 몇 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끝없이 펼쳐진 푸른 목장 옆을 지나치며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산자락에 접어들어 나는 애써 지난 감흥을 되살려 식구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막상 두 번째 마주한 초지는 그때와는 달리 그저 널따란 풀밭일 뿐 처음에 본 그 드넓은 초원은 아니었다. 그동안 그만치 사야를 넓힌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의 변화에 그 원인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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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심사 <제공 = 서산시청>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달랐다. 작은 봉우리로 이어진 산등성이에 조성한 이만한 초지를 생전 처음 봤던 것이다. 그 숱한 수목들을 다 제거하고 초원을 조성한 것도 그렇고, 산중턱을 비스듬히 깎아내 차도 다니는 흙길을 낸 것이 자못 신기한 터였다. 이때다 싶은 맘에 아빠가 호응을 하며 쳐다보니 서로가 번갈아 호기심 어린 관심을 내비쳤다.
 
  “맨 처음 누가 이 넓은 산에 풀 심을 생각을 했을까?”
  “어머 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 좀 봐! 도대체 전부 몇 개야?”
  “맞아, 그 많은 나무들을 어떻게 베어냈는지 궁금해 죽겠어! 누난 안 그래?”
  “저렇게 새파란 풀들이 어떻게 파릇파릇 자라나는 거야?”
 
바로 몇 해 전 내가 품었던 내용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초지를 만든 풀은 심는 게 아니라 풀씨를 뿌린다는 거였다. 농약을 뿌릴 때는 경비행기를 동원한다니 이쯤 되면 기업 형태의 축산업이라고 해도 좋을 성싶다.
 
  능선이 뵈는 초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달려간 데는 ‘개심사(開心寺)’. 글자 그대로 마음이 열린다는 절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찌 복음 없이 열릴 수 있겠는가? 입간판을 보니 수덕사의 말사로써 대웅전은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주차장에서 절 마당에 이르는 산길은 평일인지라 한산했다. 산사로 가는 길은 그윽하고 호젓하다. 그러나 불같이 내리쬐는 땡볕은 피하기 어려웠다. 봄철이면 벚꽃 경치가 볼만하다던데 한여름에 오니 매미소리만 요란하다. 절터를 보면 공간 활용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 절집을 보면 목재 설치의 원리를 가늠할 수 있다. 찬찬히 살펴보니 생긴 그대로 휘어진 통나무를 기둥 삼아 세운 건축 양식이었다. 그 앞을 아우른 건 작고 맑은 연못. 물 위로 흙다리를 놓아 색다른 운치를 더 하였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11호)에는 해미읍성에서 안면도까지 ‘원형에 가까운 성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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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해미읍성에서 안면도까지 ‘산지를 덮은 대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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