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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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이 당장 고칠 점은 아무데나 가래침을 뱉는 행태. 밤낮 담배를 물고 사니 속인들 온전하랴. 낯선 간판 중에는 ‘Hotel Sofitel’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병기한 ‘賓館(빈관)’은 품격 있는 숙소를 뜻한다. 근사한 남경로에도 눈은 쌓여 있었다. 주말이면 30만 명의 인파가 붐비는 곳. 바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는 공연장에서 중국의 공영방송 CCTV가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 중에 우리 일행도 끼어 있었단다. 어쨌거나 남동로를 걸으며 나는 상해의 저력을 감지했다. 묵직묵직한 건물은 물론 현란하면서 정돈된 풍경이며 정교하게 다듬은 보행로를 보노라면 거의 만점에 가까울 만큼. 유독 눈길이 가는 상호도 있었다. ‘共昌眼鏡公司(공창안경공사)’라는 간판을 읽고는 안경 하나를 만들어도 더불어 함께 발전하자는 회사의 모토(Motto)를 연상케 했다. 작은 유럽으로 불리는 외탄거리는 시간이 없어 버스 투어로 대체하기로 했다.
 
  상해직할시의 상주인구를 2,400만이라던 가이드는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외지인까지 포함하면 족히 3,000만 명은 될 거라고 했다. 주변의 절강성은 약 7,000만, 강서성은 약 6,000만, 항주가 약 600만이니 도합 1억7천만 명의 경제권을 형성한다는 추산이었다. 최근 30여년 사이에 재개발에 들어가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된 터였다. 천민자본주의의 폐해는 건물지분만을 인정하는 사회주의국가에서도 세차게 불어온 참이다. 여정 말미에 들른 곳은 진주양식장. 입구에서 볼썽사납게 담배를 피우며 공기를 더럽히는 아저씨는 한국인이었다. 관리인에게 항의를 하니 자신도 말리다가 싸움이 붙어 어쩔 수 없노라고 이해를 구했다. 혀가 구르는 말솜씨의 향연. 바다진주 1개가 생성될 동안 일명 못난이 민물진주는 30개를 생산한단다. 정찰제를 통해 가이드에게 실적 배당제를 실시한다고 공표했다. 보란 듯이 진주목걸이를 걸고 유혹하는 서태후. 한낱 욕심 많은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6개월에 겨우 6mm밖에 못 자란다니 비쌀 수밖에. 해남도에서 나는 남양진주는 18mm에 1억5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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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장을 나오자마자 진입한 입체도로. 버스가 상해제2의과대학의 입간판을 두고 연안고가를 탔다. 북경서로에 있는 포동은행을 지나니 고스란히 옛 모습이 남아있었다. 어딜 가나 서민들의 움직임은 분분하고 생활상은 팍팍하다. 이어지는 간판들. 그 가운데 中國上海人才市場(중국상해인재시장), 美容外科(미용외과), M=米(미)에 눈길이 갔다. 앞엣것 둘은 대번 알아보겠으나 마지막 등식은 싸전일 가능성을 짐작할 뿐 정확한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점심은 현지식. ‘태가촌대주점’(여기서는 호텔이 아닌 식당을 대주점이라 함)으로 가니 코끼리상이 서있었다. 꽃단장한 아가씨들의 환영을 받으며 자리에 앉으니 전통악기 연주와 민속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푸짐하지만 선뜻 손들이 가지 않는 음식들. 다행히 향신료는 심하지 않았다. 가져온 김과 고추장을 양념 삼아 고기에 채소를 골고루 섞어 배불리 먹었다. 무한정 대접하는 보이차가 유난히 개운했다.
 
  중간 분리대를 장식한 열대식물의 자태. 자연환경을 수용한 조경은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예쁘게 꾸민 도로를 달리다보니 기분이 상쾌했다. 상해시동신중학을 스치며 지나친 쇠금자[金]로 인해 같은 글자를 세 자씩 모아놓은 한자가 궁금해졌다. 이를테면 물건 品(품)자는 입 셋이 모여 품평을 한다는 말이고, 밝을 晶(정)자는 날들이 합쳐 밝게 빛났고, 울릴 轟(굉)자는 수레의 요란한 소리를 듣다가 만들었고, 간사할 姦(간)은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이란 모이면 옳지 않은 일을 도모한다는 통찰을 주었다. 타락한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원리를 터득한 마당에 船(선)자와 義(의)자만 짚고 넘어가더라도 영적 의문은 상당 부분 풀릴 참이다. 선(船)이라는 한자를 들여다보면 노아홍수 이후 만들어진 글자가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 조합인즉 전자는 노아부부와 세 아들며느리 여덟 명이 방주(생명의 배)에 올라 살아남았다는 증언이 나라마다 근화설화로 생생히 존재하고 기능한다는 사실이고, 후자는 자신이 지은 죄는 내 몸[我]을 대신해 양(羊)을 잡아 번제로 드릴 때라야 씻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04호)에는 중국 상하이 기행록 최종회 ‘미래를 향하는 상하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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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상해의 포효 ‘중국인이 그린 담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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