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평택역 광장 우측 북쪽 소재 “1950년 평택폭격으로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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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금융조합거리
 
 대한제국은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설립에 관한 건을 공포하고 그 해 8월 광주지방금융조합설립을 시작으로 1910년까지 130여 개의 지방금융조합을 설립했다.
 
 금융조합은 영농자금대부를 비롯해 농산물 위탁판매, 종자나 비료 구매 등 업무가 목적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신용협동조합의 형태를 지향했지만 실제는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고 농촌화폐정리사업, 납세선전, 농사지도 장려 등 식민지배 말단기관의 역할이었다.
 
 지방금융조합은 1914년과 1918년 법령 개정을 통해 농촌촌락과 도시에도 금융조합을 설치하고 각 도(道)에 금융조합연합회를 결성하는 등 점차 체제를 정비했다. 또 구매나 판매 사업을 제한하고 농업자금 이외의 대부사업도 벌여 1938년 말 조선식산은행에 버금가는 금융기관이 됐다. 1945년까지 912개의 조합이 있었고 1956년 농업은행 설립으로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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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평택금융조합터(2003)  
 
 평택지역에는 1914년 평택금융조합이 시작돼 서정리금융조합, 안중금융조합이 설립됐다. 평택금융조합은 조합원 출자로 설립됐으며, 1921년 당시 888명 조합원이 있었다. 1922년 9월에는 조합원 수가 1,027명, 대부금이 16,438원 34전, 대부액 138,269원이었다. 1924년 오성면 안중리에 안중금융조합이 설립됐으며, 경부선 서정리역 앞에 서정리금융조합이 설립됐다.
 
 평택금융조합은 평택역 광장 우측 북쪽에 있었다. 1950년 7월 평택폭격으로 건물이 파괴됐다. 금고만은 2009년까지 민가 안에 남아 있었다. 2009년 평택역 민자역사에 서부역 광장이 확장돼 철거됐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502호)에서는 ‘원평동 한성공동창고 터’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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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1914년 당시 원평동 평택금융조합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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