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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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스로 도착한 곳은 ‘大韓民國臨時政府舊址(대한민국임시정부구지)’. ‘The Original Site Of Temporary Gov. Of Korea’ 영문명이 선명했다. 참관권을 받아든 채 쳐다본 영상. 자원봉사들의 손길로 유지되고 있었다. 초라한 간이 주막(여기서는 이를 ‘빠거리’라고 불렀다)이 널린 문명소구(文明小區) 골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낡을 대로 낡아빠진 청사건물. 기미독립선언이 있던 1919년 4월 13일 창설하여 수차례의 이전을 거쳐 이곳까지 옮겨오는 동안 숱한 고난을 딛고 버텨온 세월이 7년이었다. 그런 뜻에서 하마터면 헐릴 뻔한 것을 1990년부터 이루어진 구지의 수복사업에 성금을 모으고, 삼성이 큰 역할을 감당한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어쨌거나 가장 어려울 때 우리나라 정부의 적통을 계승한 산실이 아닌가. 국민의 일원으로서 선뜻 성금을 내니 로고를 새긴 기념품을 건넸다. 방명록에 네 사람의 서명을 남기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가진 네 사람, 건국의 시발점에 서다!”
 
  차에 오르며 발견한 신천지라는 상호 때문에 피식 웃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작년 겨울 서안(西安, Xi'an)을 방문할 때 비림(碑林)박물관에서 확인한 네스토리우스파의 교리전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왜 하필이면 이단이었을까?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은 어디로 가고 인성이 전부인 양 두고두고 해독을 끼치므로 인해 이곳이 오늘날 우상이 가득한 대륙으로 전락한 참은 아닌가해서다.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도착한 ‘동방명주타워’. 언뜻 육안으로는 468m 높이의 TV송신탑 같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그 푸둥의 랜드마크에서 추억을 남겼다. 바로 이 장면이 오랜 동안 나의 홈페이지 앞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검색대를 거쳐 어눌한 영어 설명을 곁들인 초고속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 전망대에는 인파로 붐볐다. 짧은 시간 치솟은 탓인지 귀가 멍했다. 값비싼 대리석으로 치장한 실내장식, 그 만만치 않은 화려함으로 중국의 국력을 열방에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시야는 흐린 날씨로 인해 좀 답답했지만 사방을 둘러보며 어느 누군들 놀라지 않으랴. 상하이의 상전벽해. 황포강물을 따라 컨테이너박스를 실은 대형 선박과 어부들이 그물을 치는 소형 선박이 한데 어우러져 떠가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반면에 지저분한 병원지붕이며 비뚤어진 담장의 외관을 보면 고금(古今)의 미묘한 조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아쉽다면 보안상의 이유로 관람대를 267m로 제한한 것.?더 높이 올라간다고 더 멀리 바라볼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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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사불란한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행한 거대 공사가 있었다. 상해와 항주를 이은 34km짜리 세계 최장다리와 양자강과 황포강을 뚫는 하저터널이 그것. 기회가 닿으면 물속을 지나가는 하저터널은 꼭 경험해보면 좋겠다. 홍콩 섬과 뉴욕 맨해튼의 하저터널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대비해보고 싶다. 땅에 대해 사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의 장점이 때로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야경으로 유명한 상해이건만 도통 불빛이 없었다. 예기치 않은 눈사태로 인해 생고생하는 인민들과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전기 공급을 제한하고 있었다. 택시 안에는 강도행위를 막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했다. 춘절 명절이 가까워올수록 귀향 자금을 마련하려고 절도행각을 벌이는 사례가 부쩍 늘어서란다. 가이드가 다같이 “여보 사랑해!”를 외치라고 했다. 뜬금없는 제안에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순순히 따라했다. 첫째는 여권 조심, 둘째는 보따리 조심, 셋째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얘기였다. 하여간 상해에서 누군가 슬금슬금 말을 걸면 100% 사기란다. 아예 말을 못하면 당할 거리가 없는데 뭔가 말문이 트인다 싶을 때 수작에 걸려드는 원리를 재밌게 설명했다. 중국민생은행을 지나 지하로전(우리의 지하도)을 빠져나오니 ‘개선로’였다. 기다리던 점심은 한식. 쇠고기불고기와 김치찌개가 먹을 만했다. 외국에 왔으니 무조건 현지식을 즐기라는 논리는 신토불이를 떠나 개인차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게 나의 지론. 물론 차려진 음식이 고맙지 않다거나 재료가 이상해 도무지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오랜 세월 익숙해진 입맛이 뱃속을 편하게 해준다는 체험적 바람이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01호)에는 중국 상하이 기행록 네 번째 이야기 ‘동리의 수더분한 얼굴’이 이어집니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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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상해의 포효 ‘임시정부 청사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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