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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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7:38 출발.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였다. 성령하나님께서 보호하시지 않고서는 이런 평온은 누릴 수 없다. 우리 네 식구는 목하 중화인민공화국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야간열차를 타고, 그것도 춘절이 막 시작된 마당에 북경에서 상해까지 가로질러가는 참이다. 비좁은 공간에서 돌아가며 세면을 마친 뒤 이경(二更, 21:00)쯤 가족예배를 드렸다. 흘러넘치는 은총의 강수에 잠겨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때마침 차창 밖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서설(瑞雪)이 흩날리고 있었다. 까만 밤을 하얗게 밝히는 눈발을 따라 반짝이는 등불이 밀려오고 밀려갔다. 그렇게 우렁찬 기적을 울리며 내닫는 기차. 사실 당찬 가이드가 제 일인 양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이렇게 온 식구가 한 칸에 모이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못내 미심쩍어 하는 중국인 노파는 두 번 세 번 공안의 확답을 받고서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2층 침대보다 비싼 1층을 그냥 준다고 해도 말이다. 우스개지만 코앞에서 이른바 ‘노파심(老婆心)’을 직접 확인한 셈이다. 열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이름 모를 역에서는 또다시 점검이 이뤄졌다. 일제히 달라붙어 기차 하단부를 두드리는 쇳소리가 싫지 않았다. 궁금해 커튼을 걷으니 온 누리는 온통 눈 세상이었다.
 
  침대열차에서 맞은 이른 아침.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거듭거듭 기상시각을 체크한다고 했건만 희미한 전등 탓에 예정한 시각을 한참이나 지나쳐버린 터.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온 한줄기 빛은 그냥 눈빛이 아니었다. 날이 밝아 차창에 비친 날빛이었다. 이미 훤한 아침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야 눈꺼풀을 부비고 벽시계를 보니 아뿔싸, 04:10분에 바늘이 멈춰서있는 게 아닌가. 실제 시간은 06:33. 황급히 아내를 깨우고 아이들을 일으켰다. 하차시각이 07:08이니 이제 남은 시간이라곤 불과 30여분, 아이들은 세면실로 보내고 나와 아내는 부랴부랴 짐을 챙긴 뒤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렇다고 예배를 빠뜨릴 수는 없는 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제8편을 묵상하고 가장의 대표기도로 마무리한 다음 하차하는 줄에 어렵사리 끼어들었다. 플랫폼은 엄청난 인파의 물결. 한참이나 남녘인데도 상해의 겨울은 제법 쌀쌀했다. 기이하게도 오르내리는 승객들을 비집고 초소형 자동차가 다녔다. 플랫폼에서 짐짝을 나르는 지게차들과 뒤섞인 채. 그 틈새로 피켓을 들고 일행을 기다리는 가이드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 지인을 만난 듯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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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이 보니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 남성상. 가이드의 안내로 미끄러운 바닥을 지나 조심조심 버스에 오른 시각은 07:25, 그는 사비로 구입한 빵과 우유부터 돌렸다. 14세 때 중국으로 건너온 교포3세. 조부의 고향은 안동이었다. 다소 어눌하지만 그런대로 무난했다. 신기한 건 택시 넘버였다. 첫 자가 우리네 렌트카와 같은 ‘許(허)’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엘란트라(지금은 단종) 일색이었다. 북경에 비해 한층 세련된 거리. 하늘 높이 올라간 빌딩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왔다. 참으로 보고 싶어 별렀던 곳을 이제야 밟은 참이다. 가이드가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후줄근한 표정과는 달리 자신감에 넘치는 화두.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상해에 관한 퀴즈를 냈다. 무턱대고 상하이를 서울하고 비교하라는 게 문제였다. 의도가 다분히 도발적이랄까. 다들 멀뚱멀뚱 쳐다보니 어디가 몇 년을 앞섰겠느냐는 부제를 달았다. 나는 서울이 10년은 앞질렀다고 답했다. 가이드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운 채 상해가 무려 20년은 위라고 자랑했다. 인정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순간 뭔가 꺼림칙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간 간간이 학생들이 물을 때마다 중국을 가리켜 ‘부실과 분열’이라는 단어로 요약하기를 주저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계 인사의 말과 책을 통해 갑자기 성장한 중국의 허실(虛實)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눈을 크게 뜨고 냉철하게 살펴볼 일이었다. 공룡 같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실체를 여과 없이 들여다보려면 말이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499호)에는 중국 상하이 기행록 두 번째 이야기 ‘눈으로 뒤덮인 도로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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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상해의 포효 ‘겨울잠을 물리친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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