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세상사는 이야기 증명사진.jpg  원주를 가려하니 도무지 표지판이 뵈질 않았다. 교차로마다 친절히 안내판을 달아주면 좋으련만 그렇지를 못하니 짜증스럽다. 외지인을 위한 배려에는 아주 인색한 게 우리나라다. 묻고 물어 원주를 잇는 국도에 겨우 들어섰다. 중간 목적지는 ‘민족사관고등학교’. 횡성을 가려하니 ‘SBS 토지세트장’ 입간판이 보였다. 아내가 흥미 있어 하기에 들렀다. 평사리로 꾸민 서희 집과 임이네, 구한말 중국의 하얼빈 거리며 북경 시가지, 일제의 탄압을 대변하던 주재소 및 신식교육을 담당하던 구식학교 등 모두는 소모품 수준이었다. 합판을 사용해 엉성하게 지은 모양새가 세찬 풍상이라도 맞닥뜨리면 얼마나 견뎌내려나 걱정스러웠다. 좀 가혹하게 평가하면 마치 일회용품인 흐늘거리는 듯했다. 인력거가 있었다. 아내를 태우고 끌어 보았다. 몇 발짝 당겼지만 힘보다 숫기가 모자라 거리를 휘젓지는 못했다. 나오는 길에 ‘송호대학’엘 갔다. 궁벽한 곳에 위치한 전문대학의 어려움이 피부에 와 닿았다. 넓지 않은 교정이 활기를 잃은 채 낮잠에 빠져있으니 졸업생의 전도를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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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사관고등학교 정문
 
  파출소에 멈춰 경찰관에게 물은 끝에 찾아든 ‘민사고’. 안타깝게도 기울어가는 해였다. 상징처럼 버티는 교문을 들어서니 다산과 충무공의 동상이 물끄러미 우리 부부를 쳐다보았다. 성균관 유생의 흉내를 낸 교복, 조선왕조의 낡은 유물 같은 옛 건물들은 빛이 바랬고, 둔덕에는 짓다 만 건조물이 방치돼있었다. 주위에 무성한 잡풀들이 파스퇴르우유회사의 몰락과 더불어 저물어갔다. 이런 판국에 갑절의 월급을 받는 교원의 입지가 편할 리 없다. 1년이면 무려 40억 이상을 쏟아 부어야 유지된다는 취약한 재원구조를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지상(紙上)이나 공중파에 소리 높여 호소해본들 대뜸 떠안을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 현실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졌다.
 
  제법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라 인사성이 밝은 한 남학생을 만났다. 초창기 숙소쯤으로 뵈는 여러 채의 흑기와 한옥의 용도를 물었다. 지금 일부만 학생들의 특별활동 공간으로 쓴다고 대답했다. 바로 그때 아내는 극심한 영적 감지를 느낀 듯 편두통을 호소했다. 곧 구토할 표정으로 힘겨워했다. 메스꺼운 기운이 전신을 감싸고도는 중이었다. 당집이나 굿터 같은 데서나 느낄 법한 걸 여기서 겪게 되니 무척 황당한 일이다. 이마만큼 영적으로 피폐한 곳이라면 해답은 간단하다. 즉 예수님 없이 한때 잘 나가는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 풀자면 인간의 교만으로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일순간이라는 사실을 흠칫 엿본 터였다.
 
  원주로 들어섰다. ‘상지대학교’를 찾으려하니 도무지 감 - 본고는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얘기 - 이 안 잡혔다. 길눈 밝은 택시기사에게 물은들 별무소용. 고맙게도 한 청년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런대로 전통 사학에 걸맞은 위용. 나오는 길에 학생들의 동태를 살피며 아내와 나눈 담론인즉 어디 비단 여기뿐이랴마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거라는 진단이었다. 강원대 - 한림대 - 상지대 - 송호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중하위 흐름을 짚어봤으나, 우리 부부역시 대학생 자식을 둔 부모의 처지와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이 한데 버무려진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적어도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전당이라면 기성세대와는 다른 지적 눈빛을 지녀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등학교의 졸업장을 부여안고 일렬종대로 늘어선 대한민국의 입시현장. 입맛이 씁쓸한 건 단지 우리 부부만의 심정이랴.
 
  어느덧 태양은 서산에 걸쳐있었다. 내친김에 들르려던 ‘박경리 토지문학공원’과 한라대학교’는 이담으로 미뤘다. 영동고속도로를 탔다. 낮에 누꿈했던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세찬 빗속을 헤치고 용인에 접어들 즈음 슬슬 막힐 조짐을 보이기에 주저 없이 톨게이트로 빠졌다. 출발할 때와 같은 길을 이용하려는 심산. 그러나 경부고속도로 옆인들 만만하랴. 고맙게도 아내의 기지로 찾아낸 새 길로 접어들었다. 쏜살같이 내달리니 저녁 7시 5분 전. 1박 2일의 여정 내내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신 우리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릴 뿐이다. 즐겁고 알찬 늦봄나들이였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498호)부터 중국 상하이 기행록 첫 번째 이야기 ‘겨울잠을 물리친 상해’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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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늦봄 보내기 ‘봄볕에 그을린 민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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