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21종 생태계교란 생물 지정 ‘14종 생태계교란 잡초’
 
외래식물 급속히 개체수 확산하며 생태계 위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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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제(경기남부생태교육연구소장·지역생태연구가)
 
 얼마 전, 누군가가 고개를 갸우뚱 한 채로 “선생님, 주변에 잡초라고 하는 풀이 많은데, 잡초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늘 봐오고, 나름 그들의 소중한 이름을 불러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잡초라는 이름만으로 화단에서 이들을 제거했던 기억이 눈앞에 어른거리면서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을까 하고 잠시 머뭇거린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국어사전에 보면 “잡초란 잡풀과 같은 말로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로, 두산백과에는 “경작지·도로 그 밖의 빈터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로, 농업용어사전에는 “농경지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경제행위에 반하여 직·간접으로 작물에 해를 주어 생산을 감소시켜 농경지의 경제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작물 이외의 초본류를 통칭한다”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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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산골저수지에서 군락을 이룬 ‘살갈퀴’
 
 정리해 보면, 잡초란 단어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식물을 지칭할 때 쓰인다. 주변 논둑이나 밭둑 주변 혹은 도로변을 둘러보았을 때 이용할 목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작물이 아닌 모든 풀은 잡초에 해당되는 것이다. 요즘 논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냉이와 꽃다지, 주름잎, 뚝새풀, 점나도나물은 물론이고 밭둑 주변에서 쉽게 만나게 되는 쑥과 개망초, 지칭개, 광대나물 등은 그저 잡초라는 이름의 풀인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 또는 화물 등과 함께 국내에 들어온 외래식물이 사람이 심고 가꾸지 않아도 우리 땅에 뿌리를 내려 사람의 간섭 없이 스스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식물을 ‘귀화식물’이라 부른다. 이들 중 수박풀이나 어저귀, 돼지감자 같은 귀화식물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관상의 목적 혹은 섬유재료나 공업재료로 들여와 작물로 재배되던 중 일부 또는 전체가 일출되어 새로운 서식지에서 생명을 이어가다가 택지나 공장부지 조성을 비롯하여 도로 공사와 자연이 파괴된 장소 그리고 농경지에서 잡초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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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리문화촌 주변 가시상추와 광대나물
 
 본래의 서식지를 벗어난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일부 외래식물은 급속히 그 개체수를 확산하며 새롭게 정착한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하는데, 이들을 환경부에서는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환경부는 1998년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파랑볼우럭 3종을 생태계교란 야생생물로 지정했으며, 작년 1월 붉은불개미가 추가되면서 현재까지 총 21종이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돼있다. 그들 중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가시박,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양미역취, 가시상추, 갯줄끈, 영국갯끈풀 등 14종은 생태계교란 잡초로 집중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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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할 밭잡초들의 운명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 사라졌지만 제일 먼저 싹을 올려 바닥을 덮은 식물이 쇠뜨기였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여느 식물보다도 탁월한 적응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생명의 집합체가 있다면 이들이 바로 잡초인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모든 식물과 동물은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생명이며, 자신들의 친구라고 여겼기 때문에 작물과 잡초를 구분하여 차별하지 않았다고 한다.
 
 쑥, 냉이, 개망초, 뽀리뱅이, 왕고들빼기, 자주광대나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우리 주변의 잡초들은 이미 생태계의 일원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더함도 덜함도 없이 그들 스스로에게 주어진 역할과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다만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이거나 농경지에서 사람들이 이용할 목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식물에 직·간접으로 해를 준다고 해서 구별하였을 뿐 실제는 척박한 곳에서 잘 견디며, 버려졌거나 오염된 땅의 개척자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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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위천 생태계교란 생물 단풍잎돼지풀
 
 잡초들의 구분과 운명은 결국 우리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보잘 것 없는 것은 없고, 가치 없는 생명도 없다”고들 한다. 한동안 그렇게도 농부들에게 원성이 자자했던 쇠뜨기와 쇠비름, 괭이밥, 환삼덩굴로부터 시작하여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된 가시박과 단풍잎돼지풀에 이르기까지 잡초(雜草)와 귀초(貴草)의 구분이 갈수록 더욱 애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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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적응력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쇠뜨기
 
 우리가 흔히 쓰는 고사성어에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언제까지만 해도 뽕나무과의 암수딴그루 덩굴식물인 환삼덩굴과 호프는 모두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잡초였지만 어느 날 유럽 원산의 호프 암꽃이삭이 맥주 제조 원료로 쓰이면서 잡초였던 호프는 귀한 대접을 받는 귀초(貴草)로, 그렇지 못한 환삼덩굴은 여전히 악초(惡草)로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풀꽃 세상에도 ‘잡초만사 새옹지마’란 말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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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잡초라는 이름의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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