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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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섬주섬 필요한 짐 몇 가지를 챙겨 느긋이 차에 올랐다. 차일피일 미뤄오던 여행이었다. 여태껏 한 번도 가지 못했던 ‘남이섬’과 ‘춘천과 원주 일대’가 목적지. 동선이 되면 ‘아침고요수목원’을 거쳐 슬쩍 동해안까지 다녀올 셈이다. 이 세 곳은 세간에서 심심찮게 들먹이는 모양새가 어쩌면 그리들 빼닮았는지 나의 뇌리에 각인되기를, ‘욘사마’ 열풍으로 들썩이는 터에다가 정초만 되면 어김없이 복을 기원하는 장사진을 이루는 처소이기에 꼭 한번은 찾아가보려던 참이었다. 기동한 참에 응당 그 주변에 널린 풍경과 명소들을 두루 두 눈 가득 담아 올 요량이다. 일단 떠나기만 하면 으레 그래 왔던 것처럼.
 
  숙박을 예정해서인지 아내의 몸놀림이 유난히 재다. 아내와 출발 예배를 드리고 운전대를 잡으니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요즘 우리 가정예배의 말씀은 ‘창세기’ 열전, 그 다운데 거푸 잔머리를 굴리던 야곱의 소행이 제풀에 꺾이는 역사(役事)를 접하면서 새삼스레 깨닫는 점이 많다. 계획은 사람이 할지라도 시행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 있다. 옆에 앉은 여인은 모처럼의 화려한 외출이 즐거운지 자못 흥겨운 표정이었다. 이게 바로 여행이 주는 기쁨이요 축복이리라.
 
  평택과 용인을 잇는 고속화도로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 기술자들의 토목기술이 가히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긍케 하는 역작. 가는 데마다 길을 물 흐르듯 설계해 놓았다. 브레이크 한번 잡지 않고 단숨에 이천 가는 길목을 연결해주었다. 산야는 온통 오월의 싱그러운 연녹색으로 뒤덮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 새삼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도 저절로 된 것은 없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바로 그 증거다. 설계도가 있다면 응당 설계자가 있어야 마땅하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셨으면 전능자께서도 엿새를 일하시고 하루를 쉬셨을까. 하지만 그건 세상의 질서를 몸소 보이신 조치였다. 태초에 시간의 순서를 정하지 않으셨다면 타락 이후의 우리네 삶은 더욱 고달팠을 게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이토록 감미로운 휴가를 누릴 수 있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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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수리로 향하는 길목. 상수원 지역답게 무척 청정했다. 옥에 티라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각종 요식업과 숙박시설들. 날로 수질오염이 심각해진다는 언론보도가 엄살이 아님을 단박에 알 것 같았다. 가다보니 ‘서울종합촬영소’ 간판이 보였다. 엄연히 남양주 땅이거늘 서울이라니 이상했다. 일정엔 없지만 내친김에 구경하기로 했다. 노변에 늘어선 음식점들. 촬영에 동원된 연기자와 스텝을 겨냥한다지만 이 많은 좌석을 채울지는 의문이다. 오죽하면 여기까지 자영업자들이 몰려들까를 생각하면 몇 차례 나들이할 때는 보탬을 주고 싶다가도 터무니없는 바가지에 워낙에 MSG를 냄새조차 싫어하니 한사코 도시락을 고집하는 참이다. 내가 유독 회식 모임을 꺼려하는 이유다. 공금을 흥청망청 쓰는 것도 문제로되 막상 대화다운 대화는 별반 없고 비위생적인 술잔이 오가는 습속을 기피한 지 오래다. 
 
  한눈에 건물들이 번듯했다. 세트장 몇 동을 끼고 오르니 판문점. 거기엔 자유의 집, 판문각, 군사정전위 사무실 등이 있었다. 그 모두는 실제 크기의 7~8할 정도랬다. 실물보다 작아야 화면발이 잘 받는다는 게 그 이유. 위쪽에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이 있었다. 올라서니 눈앞에 펼쳐진 자연 풍광이 가히 장관이었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그리 깊지 않은 골짜기로 이어졌는데 아기자기한 조화로움이 두 눈을 사로잡았다. 절대자의 솜씨가 아니면 도저히 빚어낼 엄두조차 낼 수 없다는 찬탄을 아내와 나누며 내려왔다. 그 옛날 여염집 동네. 방구석은 좁아터지고 골목은 비좁았다. 싼 소품들을 모았고 허술한 티가 물씬 묻어났다. 때마침 드라마 녹화가 있었다. 그 둘레는 완전 비상. 삼삼오오 여학생들의 호들갑스런 괴성이 온 마을에 자자하다. 물어보니 서울 도심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정확한 배꼽시계의 울림.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싸온 점심을 들었다. 경영난으로 곧 문을 닫는다는 현수막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94호)에는 ‘늦봄 보내기’ 두 번째 이야기 ‘아침고요 수목원 속살’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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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늦봄 보내기 ‘서울 종합촬영소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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