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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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을 나와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나는 자꾸만 반경을 넓히려하고 아내는 한사코 주위를 맴돌려했다. 널찍한 거리를 따라 가니 곡선을 활용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이렇게 상업거리로 정착한 지가 어언 백년이란다. 밤이 오면 더욱 화려한 불빛으로 행인들을 유혹한다는데, 시간이 한정된 길손이기에 그쯤해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고대와 현대의 조화를 두고 그곳을 떠났다. 출출한 김에 들어간 북한 식당. ‘모란관’은 이번 여행 중 최대의 요리 경험이었다. 지금도 입속에 군침이 돌만큼.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예약한 비빔밥과 함께 반찬이 나왔다. 통고추를 갈아 담은 김치, 깍두기, 떡볶이, 인절미, 묵, 육회, 잡채, 쇠고기, 목이버섯요리 등 맛없는 게 없었다. 우리는 서빙하다 말고 드럼을 치러가는 아가씨를 보고 웃었다. 실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노랫가락. ‘반갑습니다’, ‘휘파람’을 간드러지게도 불렀다. 아가씨더러 볼륨을 좀 줄여 달랬더니 힘도 안 들이고 “끝났습니다.”라고 응답해 모두들 파안대소. 당성이 좋고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외화벌이를 위한 해외봉사단원인 셈이다. 3년을 단위로 돌리는데 자본주의에 물들기 전 재빨리 사상을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춰놓은 터. 이들은 그 잘난 이념의 노예였다.
 
 표지판을 보니 지하철을 지철(地鐵)이라 했다.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삼륜차! 이게 얼마만인가? 1970년대 잠깐 굴러다니다가 없어진 차종을 예서 볼 줄이야. 퍽 합리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인테리어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판다고 했다. 기껏 공사한 것을 다시 부술 바에야 자신들의 구미에 맞도록 꾸미고 사는 편이 낭비를 줄일 테니 말이다. 간만에 보는 선명한 한자. 北京大學生体育館(북경대학생체육관). 재개발의 바람은 이곳에도 불고 있었다. 회사이름의 끝은 有限公司(유한공사). 아까 들렀던 동인당 앞을 지나니 이화원의 팻말이 나왔다. 이화원(頤和園, 간체자는 모양새가 좀 다름)은 북경 서북부의 해정구에 위치한 정원 공원이자 여름철을 위한 별궁으로 60m 높이의 만수산과 전체 면적 가운데 3/4을 차지하는 쿤밍호에 많은 공을 들여 완공했단다. 항주의 서호를 본뜬 그 인공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바로 옆 만수산을 쌓았는데 고전적인 건축미를 살려 1750년(건륭제 재위 15년)부터 공사를 개시했다고 덧붙였다. 솜씨 좋은 장인들을 동원해 다양한 정원양식의 궁궐을 건립했다는데 커다란 호수가 꽁꽁 얼어붙어 있어 나에겐 별반 감동이 없었다. 불쌍하게 갇혀 지내다 죽은 광서제에 얽힌 어항식탁을 보거나, 미신이 배어있는 폐가석을 둘러보거나, 서태후가 좋아한 공작새를 닮은 나무 앞에 서본들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대체로 건물과 건물을 통과하는 문턱들이 높다. 그 턱을 넘자마자 만난 대숲. 대나무는 언제 보아도 싱그럽다. 꺼칠한 잎새며 위로 뻗은 줄기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가 필자를 끌어들였다. 잠시 서서 댓잎 냄새를 맡았다. 크고 작은 키를 재가며 어우러진 대나무 수풀 가운데 나의 서재를 둔다면 얼마나 상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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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엄했을 황비의 방을 들여다보니 우습게도 고시원 분위기가 났다. 침대가 유난히 길어 물어보니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가슴팍을 파고든 미신의 잔재. 아니 타고 남은 재가 아니라 숫제 요원의 불길 같다. 여기저기 왕을 상징하는 용비늘에 봉황날개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300년 묵은 나무에 눈길이 갔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쿤밍호의 수난사는 파란만장하단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영불연합군과 1900년 의화단운동 때 8개국의 서양 열강이 공격했음에도 완파만은 모면해 1886년과 1902년 서태후에 의해 재건된 역사를 갖고 있었다. 1888년부터 현재의 이화원으로 불리며, 1998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중국의 조경과 정원예술을 빼어나게 표현하였다는 게 그 선정 이유. 참고로 그 등록기준을 보면, 첫째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표현한 걸작이든지, 둘째 일정 기간을 통하여 문화권에 건축, 기술 등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경관 디자인을 발전시킴으로써 인류의 가치를 구현했든지, 셋째 현존하거나 소멸한 문화적 전통 또는 문명의 희귀한 증거를 지녀야 한단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89호)에는 ‘베이징 돌아보기’ 최종회 ‘북경역사의 춘절 그림’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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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이징 돌아보기 ‘북한 식당의 노랫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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