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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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발을 치켜든 길라잡이는 다소곳이 따라야 했다. 만의 하나 구중궁궐에서 길이라도 잃으면 큰일. 만약을 위한 길 찾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첫째 일행이 안 보일 때는 여기저기 찾아 헤매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어라. 둘째 주저하지 말고 다른 팀의 가이드에게 부탁하라. 셋째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 ‘아리랑’을 크게 불러라. 마지막 부분에 위트가 넘친다. 사실 온통 붉은 색만 보일 뿐 별반 볼거리도 없고 볼품도 없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뜰의 삭막함. 가는 도중 무쇠로 만든 가마솥이 있었다. 가이드는 정확히 300여 개를 헤아리는 항아리의 용도를 물었다. 대뜸 정답을 맞춘 건 아내였다. 그런 엄마를 보고 아이들이 환호한건 당연지사. 태평항(太平缸)' 또는 '태평수항(太平水缸)'이라고 하는데, '길상항(吉祥缸)'이라 불리던 그것의 쓰임새는 화재대비용 물통이라고 했다. 하긴 아이 둘 다 사학을 전공한 터였다. 아내는 인터넷을 통해 틈틈이 배경지식을 쌓은 효험을 톡톡히 본 거였다. 유난히 지붕이 큰 황궁 곳곳에 정교하고 세심하게 조각한 용과 청동사자들이 물끄러미 응시하는 듯했다. 1990년대 베이징에 세운 건축물들에 하나같이 등장했던 그 모양새를 실컷 구경하는 중이었다.
 
  무릇 자금성을 가득 메운 자색물결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빛깔. 동시에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한단다. 즉 북극성은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이니 신의 아들인 황제가 사는 궁전 역시 그 하늘을 상징하는 자색으로 지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남과 북의 긴 축 위에 놓인 자금성의 건축물들은 모두가 남향이었다. 이는 남쪽의 양기를 받고 북쪽의 바람과 음기로부터 황궁을 보호하려는 의도. 성 내부는 정무 처리를 위한 구역(외조)과 황제의 주거 구역(내정)으로 나뉘는데, 남쪽에 있는 외조는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에서 시작되고, 북쪽으로는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동서에는 문화전, 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한 줄로 도열하였다. 그 중에 중국의 최고(最古) 건축물로 기록된 태화전은 당나라 당시 높이가 35m, 면적이 2,377㎡의 웅장한 크기로 지어져 큰 행사 때마다 주요 의식이 치러지는 곳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한꺼번에 9만 병사가 모일 수 있다는 것. 넓은 뜰이 자리한 외조의 북쪽으로 펼쳐진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었다만 글쎄다, 하늘의 아들이면 뭘 하고, 황제를 위한 자색이면 뭘 하나? 예수님을 알고도 부인하면 결국은 곱하기 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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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 않은 동선을 걸어 나와 다음 장소로 향했다. 전기차가 다니는 큰길을 건너 다시금 건널목을 지나니 옛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한 민속촌이 있었다. 서태후 시절 왕족이 살던 옆 동네의 꾀죄죄한 홍등가를 그녀의 아들이 할 일 없이 전전하다 성병에 걸려 죽어간 데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는 막바지 기승을 부렸다. 인력거를 타고 대략 20여 분간 베이징의 뒷골목을 누비는 현장. 깡마른 노인이 무릎에 냄새가 나는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런대로 괜찮은 프로그램. 좁다란 길을 비켜가다가 백발노인이 타고 가던 자전거와 접촉해 가벼운 실랑이가 일었던 일을 빼고는 소시민의 주거지를 둘러본 보람이 있었다. 북경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왕푸징(王府井)거리’. 유래인즉 일찍이 황족들의 저택이 있던 동네의 우물을 가리키는데, 이를테면 우리의 명동에 비견할 만한 곳이라고 보면 된다. 북경시 최대 번화가로써 시내 동편에 약 100여개의 상점이 1km가량 늘어서 있었다. 부러운 건 노점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가운데 중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곳은 ‘북경백화점’이지만 일행이 구경한 곳은 ‘apm백화점’이었다. 윤기가 나는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딸내미 말마따나 대한민국의 어느 백화점인들 이보다 더 나으랴. 아니 오히려 앞서가는 느낌이 강했다. 번들거리는 로비에서 향기로운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정교하게 꾸며 놓았다. 화려한 상품진열대를 갖춘 상점과 상호도 그렇거니와 식당가에는 붐비는 한식당도 있었다. 다만 여기서는 북한식으로 주문하는 걸 관례로 여겼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88호)에는 ‘베이징 돌아보기’ 아홉 번째 이야기 ‘북한 식당의 노랫가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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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이징 돌아보기 ‘자금성은 온통 붉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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