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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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경협(龍慶峽, 룽칭샤)으로 향하는 길. 산중턱 비스듬한 바위에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강택민 & 김일성’. 물론 한자였다. 입구에서 내려 미니버스(일명 빵차)로 갈아탔다. 원래 70m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벼랑에 인공 호수를 만들어 유람선을 띄우는 곳을 겨울철에는 하얼빈의 빙등제를 본떠 갖가지 얼음조각장을 만들어 놓았다. 가슴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 금세 온몸이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한편으론 아내에게 미안하면서도, 저렇게 자식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잘 데려왔다는 두 마음이다. 각종 얼음조각의 전시장. 나름대로는 종류를 더하고 한껏 세기를 부리려 했지만 규모를 키운 걸 말고는 조잡한 느낌이다. 중국 예술의 현주소이자 한계였다. 사진을 남기고 서둘러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돌아 나오니 가이드가 군고구마와 찐 달걀을 건넸다. 출출한 참에 두 손이 지저분해지는 걸 감수하고 고맙게 요기했다.
 
  다음 차례는 서커스였다. 가는 길에 만난 교회당은 첨탑이 없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뿐 전도의 자유를 속박하는 까닭에 안타까웠다. 차창으로 언뜻 ‘장가구(張家口) 126km’라는 팻말을 보았다. 비경을 자랑하는 장가계(张家界)와는 무슨 관계일까. 주유소의 명칭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었다. ‘汽油紫油(기유자유), 모조리 국영이란다. 논란이야 있겠지만 한중일 한자문화권을 회복하기 위한 당위가 느껴졌다. 어설픈 스키장을 뒤로하고 마주친 중국과기학원. 척박한 땅에서 자란 과수나무가 꾸부정한 촌로만큼이나 안쓰러웠다. 그때 가이드가 던진 야한 유머. 20대는 축구공이란다. 욕심이 나서 빼앗지만 막상 간수하기가 곤란하니까. 30대는 농구공이란다. 주무르고 놀다가 남에게 넘기니까. 40대는 탁구공이란다. 서로들 가져가라고 미루니까. 50대는 골프공이란다. 어디든 상관없이 날려버리니까. 그러더니 한 술 더 떠 ‘넣을 때는 기분이 좋고, 넣고 가만히 있을 때는 더욱 좋고, 뺄 때 가장 좋은 것은?’ 답은 <저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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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두고 쌓인 한(恨)이 많아 한민족이라더니 중국인민에게도 삼한(三恨)이 있단다. 첫째 죽을 때까지 돌아다녀도 다 못 보고, 둘째 56개 소수민족의 별의별 음식을 다 맛볼 수 없고, 셋째 일생을 배워도 한자를 다 모르고 죽는다는 것. 학력이 대졸이라야 고작 4,000자 정도를 안다니 공부는 끝이 없다. 수준을 높여 중화민국 역사상 4대 미인을 대란다. 해답은 두 겹 사자성어로 비유한 침어낙안폐월수화(侵魚落雁閉月羞花). 아름다움으로 으뜸은 서시(西施, 본명은 西夷光, 서이광)로서 그녀의 미모에 반해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조차 잊은 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侵魚]는데 오나라의 미인계에 넘어간 월나라이고 보면 ‘서시빈목(西施嬪目)’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올 만도 하다. 눈이 아파 찡그린 얼굴이 더 예뻐 보인 나머지 이웃집 추녀가 흉내를 내다가 웃음거리가 되었다니 말이다. 낙안(落雁)은 왕소군(王昭君)의 자태에 기러기가 날갯짓을 잊은 채 땅으로 떨어졌다고 하고, 폐월(閉月)은 초선(貂嬋)의 용모에 달마저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다고 하며, 수화(羞花)는 양귀비(楊貴妃)의 용자에 꽃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는 민담이란다. 그 중 마지막은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말로써 원래 진나라 헌공(獻公)의 애인 여희(麗姬)의 미모를 칭송한 데서 빌려온 거라고 했다.
 
  인문학을 꺼리는 기류는 중국도 매한가지. 이곳 역시 대학 진학의 목적은 취업이 최우선이란다. 외곽에서 북경시내로 접어드니 눈동자는 바쁘게 돌아갔다. 올림픽을 기념한 오배로(五杯路)는 걷고 싶은 거리였다. 고풍스런 고성을 연상케 하는 빌딩들로 즐비했다. 새둥지(鳥巢, 냐오차오, Bird's Nest)를 본뜬 올림픽메인스타디움을 비롯해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은 어느새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철제 곡선의 조형미야말로 명품이었다. 문제는 일상화된 곡예운전. 아니나 다를까 결국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우리 차가 무리하게 끼어드는 바람에 뒤차가 추돌한 터였다. 우스운 건 원인을 제공한 우리 기사의 도주극. 십여 분을 달아난 뒤 신호등에 걸리고 나서야 다가온 상대편 기사와 이삼 분가량 언쟁을 벌였다. 재밌는 건 그냥 각자 알아서 처리하기로 한 것. 많이 우스워 보이지만 중국식 해결법의 전형이었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86호)에는 ‘베이징 돌아보기’ 일곱 번째 이야기 ‘천안문에 부는 칼바람’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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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이징 돌아보기 ‘현지 기사의 곡예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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