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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史로 보는 ‘지리지와 지도 - 지리지에 나타난 평택’ ②
작성일 : 19-01-11 13:59    
호구 221호·535명, 시위군 10명과 선군 51명 주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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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현지도(1872)’에 나타난 평택현의 관아 <사진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세종실록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의 평택은 진위현과 평택현으로 각각 나누어 기록돼 있다. 우선 진위현은 수원도호부 관할이었으며, 현령을 두었다. 옛 고구려 부산현에서 비롯됐다는 간단한 이력이 기록돼 있다. 중요한 것은 세종 6년 송장(松莊)이 진위현에 편입됐다는 점이다.
 
 진위현은 동으로는 양성(4리), 서로는 수원 소내천(7리), 남으로는 수원 영신현(7리), 북으로는 수원 송족(6리)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호구는 221호, 535명이었으며 군인으로는 시위군 10명과 선군 즉 해군 51명 정도였다.
 
 토성으로 이(李)·김(金)·최(崔)씨 등이었고, 사라진 망성은 유(柳)·송(宋)씨 등 2성, 속성은 직산에서 이주해 정착한 조(趙)씨, 그리고 새로 편입된 송장의 토성 유(柳)씨가 있다. 땅은 메말랐으며, 간척한 논이 2,841결로 논과 밭이 반반 정도였다.
 
 주요 농산물은 오곡 외에 조·팥·메밀·녹두·참깨·뽕나무·마 등이 생산됐으며, 약재로는 황금(黃芩)이 유명했다. 관내에 청호역이 있었는데, 송장이 편입되면서 진위현에 속하게 됐다.
 
 평택현은 청주목 관할이었고 태종 13년에 현감을 두었다. 동과 서로는 직산(각 6리와 8리), 남으로는 아산(10리), 북으로는 수원(10리)과 경계를 이루었다. 호수는 179호, 인구는 704명이었으며, 군인은 시위군 8명, 진군 3명, 선군 78명으로 군사적으로는 진위현보다 중요하게 인식됐다. 토성은 이(李)·임(林)·박(朴)·전(田) 등 4성, 망성은 손(孫)·전(全) 등 2성, 촌성은 박(朴)씨였다. 토양은 기름지고 메마른 것이 반반이었으며, 간척한 논이 2,234결로 논이 5분의 3을 차지했다.
 
 주요 농산물은 벼·피·콩·보리·밀, 약재는 황금이 유명했다. 진상품으로는 족제비털이 있었다. 관내에 화천역이 있었다. <참고문헌: 평택시사(평택시사편찬위원회 펴냄)> ※ 다음호(480호)에서는 ‘지리지와 지도 - 지리지에 나타난 평택’ 세 번째가 이어집니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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