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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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식구와 함께한 북경 여행. 엊그제 대학원 둘째 학기를 마친 딸과 힘든 학군장교 과정을 수료하고 육군소위 임관을 앞둔 아들은 가뜩이나 들뜬 표정이었다. 왜 아니 그러하랴, 실로 8년만의 가족나들이니……. 기실 두 아이가 연달아 고등학교(기숙사)에 진학하면서 중단했던 방학여행을 이제 국내가 아닌 해외를 향해 막 열고 있는 참이었다. 우리 네 명이 들어서니 공항청사가 꽉 찬 느낌. 남매가 반경을 넓혀 실내를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우리 부부는 예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돌이켜보면 내딛는 발걸음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이번 여행만 해도 일찌감치 달포 전에 예약했지만 좀처럼 모객이 안 되었다. 하마터면 여행 계획이 무산될 처지에 고맙게도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이렇게 좋은 팀이 꾸려진 터였다.
 
  베이징까지는 비행기로 고작 두 시간. 국적기를 이용하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아내와 미국에 갈 때 중화항공에 오르며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가뜩이나 영어가 짧은 데다 대만인 특유의 무뚝뚝함이 사람을 피곤케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줄곧 붙어 앉아 재잘거리던 남매는 기내식이 별로 안 맞는 눈치였다. 이것저것 입질해보지만 썩 내키질 않는 표정들. 도시락을 반납할 때 보니 순두부는 통째로 남아있었다. 아까워라, 제 엄마는 그걸 가장 맛있게 들었는데, ‘그래 오늘만 지나봐라. 시장이 반찬이리니’ 그렇거나 말거나 아이들의 관심사는 온통 북경거리에 쏠려있다. 어느덧 북경국제공항. 비행기 동체는 개항 50주년을 기념하여 1999년을 기해 중건했다는 신청사에 사뿐히 착륙하고 있었다. 상해 푸동공항을 모본으로 삼아 지었다는데 시설이 훌륭하다. 무표정한 입국심사대에 비자를 내밀고 빠져나오니 찬바람이 온몸을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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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 용정 출신의 가이드. 자신의 나이를 26세라고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내심 믿음직했다. 연세 지긋한 운전기사를 ‘리스프’라고 소개했다. 여기서는 대형(大兄)을 뜻하는 ‘따꺼’보다 사부(師父)를 의미하는 ‘스프’를 좋아하지만 따꺼 대신에 스프를 쓰라고 권유했다. 가이드가 다같이 인사말을 따라하란다. 안녕은 ‘니하오’, 수고는 ‘싱꼴라’, 감사는 ‘시에시에’, 아주 좋다는 ‘띵 하오’. 그렇다면 “이 기사님 안녕하세요?”는 “리스프 니하오마?”가 된다. 높임말의 경우에는 끝에 ‘마’를 붙이고. 우리 일행은 소리를 높여 운전기사에게 인사했다. “리스프 니하오마, 싱꼴라!” 그 흐름을 놓칠세라 가이드는 퀴즈로 분위기를 띄웠다. “박수칠 때 나타나는 각 나라의 특징은?” 중국인은 상하로, 북한에서는 좌우로, 우리나라는 밑으로 퍼지게 친다는 것. 딸내미의 말을 들으니 일명 아줌마박수라는데 전국노래자랑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란다. 가이드는 얘기 중간에 민족시인 윤동주를 들먹였다. 그가 용정소재 대성중학을 졸업했다며 백두산 관광코스에 그 학교가 들어있다고 소개했다. 장백산으로 둔갑한 백두산은 조만간 한 번은 올라야할 곳. 한겨울을 피해 한여름을 택하되 이왕이면 배편을 이용하는 쪽도 퍽이나 특이한 체험이리라.
 
  소형버스가 접어든 길은 ‘국문제일도로’. 다행히 대기는 그런대로 맑은 편이었다. 지독한 황사 때문에 북경행을 망설였는데 감사한 일이다. 아시다시피 여행의 성패는 날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터. 베이징은 모래바람이 심할 때는 얼굴을 아예 비닐로 싸매고 다닌다는데 얼마나 축복인가. 돌아보면 그동안 궂은 하늘로 인해 여행을 망치거나 일정에 차질을 빚은 적은 없었다. 앞으로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이나 겨울 난방의 연료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대기오염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어느새 다 커버린 아이들. 이것저것 신기한 눈빛들이다. 딸은 엄마 곁에, 아들은 아빠 옆에 앉았다. 내일은 남매를 한자리에 앉히고 여느 때처럼 부부만의 낭만을 즐길 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이란 참으로 멋진 교향악이다. 남녀가 만나 얼마큼 서로를 안다고 느낄 때 사랑을 하고 태를 열게 하시므로 이루어지는 가족공동체. 하지만 부모란 주님이 맡겨주신 아이들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양육하는 청지기일 뿐, 그 이상의 권한은 없다. 어디까지나 자식들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였기에 머잖아 결행할 홀로서기를 기쁨으로 도우면 되는 것이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81호)에는 ‘베이징 돌아보기’ 두 번째 이야기 ‘불편을 요구하는 일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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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베이징 돌아보기 ‘매서운 베이징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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