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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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치자 쿠마 목사가 오늘의 로드맵(load-map)을 알렸다. 강행군이다. 도합 열 군데가 넘는 교회를 돌아볼 계획이란다. 우리는 우선 쿠마 목사가 담당한 사역지로 향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벽지였다. 교회건물은 옛 시골의 헛간을 방불케 했다. 충격이었다. 마치 초가집 뒷간 옆에 위치했던 잿간 같다고나 할까. 지붕에 야자수 잎을 성글게 덮어 하늘이 숭숭 내다보이고, 창문이라야 나뭇조각을 대고 흙벽 사이를 뚫어 네모지게 두른 통풍구 형태. 바닥은 깔개 없이 그냥 흙으로 다져 놓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손님 접대용 플라스틱 의자 몇 개는 마련돼 있었다. 열대여섯 사람이 끼어 앉기에도 비좁은 곳에 들어가지 못한 성도들은 문밖에 그늘 막을 치고 100여 심령이 모여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니 신축교회당이 시급히 필요한 건 지당했다. 나중에 듣자하니 이마저 철도청 부지를 빌려 어렵사리 얼개만 갖춘  집이었단다. 어차피 얼마 가지 않아 비워주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던 것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손님 접대용 플라스틱 의자 몇 개는 마련돼 있었다. 열대여섯 사람이 끼어 앉기에도 비좁은 곳에 들어가지 못한 성도들은 문밖에 그늘 막을 치고 100여 심령이 모여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니 신축교회당이 시급히 필요한 건 지당했다. 나중에 듣자하니 이마저 철도청 부지를 빌려 어렵사리 얼개만 갖춘  집이었단다. 어차피 얼마 가지 않아 비워주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던 것이다.
 
  허리를 구부려 나오려는데 바로 옆집에 차린 힌두신당이 보였다. 땅바닥에 오색 빛깔로 열과 성을 다해 연꽃문양(인도의 국화는 연꽃)을 그려놓은 양태는 어딜 가나 여일하다. 곳곳에 그와 흡사한 형태로 잡신들이 널려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고 보니 여장을 푼 집 역시 앞뒷집은 힌두교도들의 모임 장소였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웅성웅성하던 소리는 예불을 드리러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국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힌두스탄(Hindustan)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이 갈수록 드세어진다는 점이었다. 처처에 마수를 뻗친 악령들과의 영적 전투가 쉼 없이 계속되는 전장(戰場), 그 한가운데 우리 3인의 선발대가 외로이 서있는 형국이었다. 부족들이 추앙하는 신상의 동상 앞이나 이름난 연예인의 초상 주위 역시 지저분하긴 매일반이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기이하게도 아무데나 마구 버리는 행태가 자연스레 생활의 일부처럼 다가오는 데 스스로 놀랐다. 대로변까지 일정부의 행정력이 미칠 여력도 없거니와 청결의식 또한 따라주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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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은 발길을 신축교회 현장으로 돌렸다. 지근거리라더니 근 10Km나 떨어져 있었다. 인근 지주로부터 70여 평의 땅을 기증받아 착공한 공사는 이제 지붕만 얹으면 끝날 만치 진척되어 있었다. 한눈에 꽤 덩치가 크고 규모(앞면 9.75m × 옆면 20.57m)가 있어 보였다. 실상 소요 자재와 인건비 일체를 지원받는 입장에서는 완공된 교회를 보여주리라 서둘렀던 참인데, 공교롭게도 때마침 시멘트 공장에서 파업을 하는 바람에 일이 지연되었다는 해명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교회는 무사히 준공을 했고, 성령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감격스런 첫 예배를 드렸다는 소식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을 보니 십자가 밑에 새겨진 글귀는 ‘This Church is Built By Jesus Using Indian Mission In Korea’, 즉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사56:7, 막11:17)라고 힘차게 선포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도선교회에서 뿌린 첫 열매였으니, 작년 6월부터 총 7차에 걸쳐 교회건축에 드린 헌금은 한화로 1,000여만 원 정도였다.
 
  붉은 벽돌을 만져보니 우리 것하고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손가락에 부슬부슬 가루가 묻어날 지경. 세찬 빗줄기라도 들이치면 죄다 녹아내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불안했다. 역시 토질이 좋지 않아 보였다. 척박할수록 철저한 분석이 따라야 하는데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게 원인인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막화의 전단계인 자갈투성이. 멀지 않은 곳에 키 작은 해바라기 밭이 있었지만 시들시들 윤기가 없다. 이파리로부터 둥그런 씨앗 판까지 좀처럼 싱싱한 싱그러움을 느끼기 어려웠다. 돌멩이 섞인 땅에서 힘겹게 자라나는 곡식들. 그제야 그간 보아온 풀죽은 전답이며 건축물마다 외양이 허름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느려터진 일거수일투족이며 벽면 전체를 볼썽사납게 덧칠해 놓은 이유를 확인한 터였다. 지역 특성상 여간해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건축시공을 진행하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75호)에는 ‘인도 비전트립’ 여섯 번째 이야기 ‘애달픈 곡조의 찬양’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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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 비전트립 ‘선교지 현장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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