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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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여정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미종족 선교지 방문이다. 이곳 풍물을 접하고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는 동시에 힌두이즘(Hinduism)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의 영적 주소를 속속들이 살핌으로써 앞으로 펼쳐나갈 전도사역의 방향에 대해 심도 있게 모색하는 사명을 부여안고 인도에 온 터였다. 전 인구의 82%인 8억6천만 명이 믿는다는 힌두교는 그야말로 만신전이다. 그 잡신의 숫자만도 무려 4억8천(통계마다 달라 특정할 수는 없음)이라고 하니 두 사람당 하나 꼴인 셈이다. 막상 현지에 와서 보니 이들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까닭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영육을 좀먹어 들어오는 귀신들의 발호와 준동이 가증스럽게 다가왔다. 수치상 2% 남짓한 기독교인은 어떤 표도 나지 않았다. 내 가슴 한편이 저리고 저며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인도에서도 아이들은 희망이고 즐거움이다. 쿠마 목사의 외동딸 ‘핸시(Hancy)’, 그 사촌자매 ‘수마바바나(Sumabhavana)’와 ‘스판다나(Spandana)’가 인사를 했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핸시를 ‘진니’로 불렀다. ‘큰애’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작은애’는 ‘아무륵’이라 한단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명명할 수는 없잖은가’하고 말장난을 쳤더니 다들 웃었다. 나는 ‘진니’에 착안하여 대뜸 ‘진선미(眞善美)’를 떠올렸다.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에다 기쁠 ‘희(喜)‘자를 붙이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N 선생과 L 선생도 훌륭한 어감이라며 선뜻 동의했다. 하나씩 불러, “진희! 선희! 미희!”라고 불러주었더니 싱글벙글했다. 해맑은 초등학생들은 내내 붙임성 있게 따라주었다. 외과의사가 꿈인 핸시는 남달리 영특했다. 무엇보다 한국말의 섭렵이 빨랐다. 인도선교를 주도한 N 선생은 이 아이의 한국유학을 진지하게 제안했다. 내 반응이 심드렁한 틈을 타 농반진반인 듯 L 선생이 선미아빠(선희와 미희의 아빠인 동생 쿠마에게 우리가 붙여준 칭호)에게 ‘딸을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망설임 없이 데려가라고 했다. 그것도 “영원히(forever)”, 무슨 연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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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세 돌아온 식사시간이었다. 몇 끼를 굶은 끝에 나온 식사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식단이었다. 싫어하는 카레를 애써 제거하고 당근을 잘게 썰어 넣어 볶음밥을 만들었다. 반찬으로는 비싼 닭고기를 자신들이 즐기는 소스를 넣지 않고 바싹 튀겨 내왔다. 솔직히 별맛은 없었지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Very delicious, nice cooker!”를 외치면서 맛있게 먹는 척했다. 이것이 내가 인도에 머무는 동안 가장 먹성 좋게(?) 때운 유일한 끼니였다. 그 누구보다 사모가 기뻐했다. “당신이 잘 먹으니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라며 웃던 쿠마 부부의 밝은 얼굴이 생각난다. 부담을 느꼈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설마하니 진담은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맨날 찬밥신세’라고 중얼거리는 볼멘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이후 불행히도 그 불만은 현실로 나타났다). 이때 N 선생이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듯 거들었다. 마냥 좋아라 달떠있는 쿠마 부인을 향해 “사모님!”이라는 존칭을 선사했다. 그리고 줄곧 그렇게 불렀다.
 
  이들의 식습관은 따로 정해진 바가 없다. 배가 고파오면 그때가 식사시간이다. 밤이든 낮이든 일과를 마치고 뒤늦게 밥을 지어 양껏 먹는 것이 생활수칙으로 굳어버렸다. 나로서는 또 한 가지 궁금증을 해소한 참이다. 이토록 열악한 영양 상태임에도 하나같이 배들이 불룩 나온 점이 의문이었으니까. 까닭인즉 포만감을 느끼며 잠자리에 드는 잘못된 습성으로 인해 특히 남정네들의 복부비만이 심각해진 터였다. 그에 걸맞은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전형이랄까. 날씬한 몸매의 처녀들 역시 주부가 되고, 하나 둘 아이를 낳는 사이 뱃가죽이 축 늘어진 뚱뚱한 아줌마로 어느덧 변신해 가고 있었다. 게다가 인도인들이 즐겨 마시는 홍차는 거의 설탕물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필자의 경우 입에 대는 순간 실례를 무릅쓰고 바닥에 내뱉을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몸에 나쁘다는 식문화 중 ‘3백’을 모조리 갖춘 셈이다. 하얀 쌀밥에 밀가루에 설탕까지. 빈곤에 의한 미개는 곧 야만을 낳는다는 명제는 허사는 아니었다.
 

■ 프로필
 
- 수필가(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 시인(창조문학 천료)
- 본보에 ‘세상사는 이야기’ 9년째 연재 중
- 신앙산문집 <주님과 동행한 오솔길> <생각만큼 보이는 세상>
- 시조집 <손기척 knock>
- 수필집 <수필은 나의 벗>
- 기행집 <글로 남긴 지구촌 기행 1>
- 블로그
http://blog.naver.com/johash
 
※ 다음호(474호)에는 ‘인도 비전트립’ 다섯 번째 이야기 ‘선교지 현장의 실상’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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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인도 비전트립 ‘아이는 앞날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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