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1907~8년 연해주 항일의병 편성... 활발한 항일전 전개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1909년 3월 5일 12명이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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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족학교를 방문한 평택시의회 권영화 의장 
 
 평택시의회 권영화 의장은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의 흔적과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8월 22일~28일까지 5박6일 동안 연해주 지역과 중국 상해의 항일 유적지 탐방을 실시했다. 본보는 권영화 의장이 항일 유적지를 직접 탐사하고, 일제의 침략 만행과 독립운동사를 실증적으로 조사하면서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계승·보전하는 소중한 기회였던 ‘독립운동사 연구조사 및 항일유적지 탐사’ 기고문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말>
 
■ 권영화 의장 “항일 독립운동의 발자취, 그 길을 걸으며”
 
1.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와 독립운동의 역사
 
 러시아 극동지역은 한반도와 두만강을 접하는 지역으로 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경지역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광활한 영토를 개척한 함경도 농민들은 러시아의 환영을 받았고, 1860년대 이후 이곳에 거주하였던 한인들의 숨결이 남아 있다. 또한 구한말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항일투쟁의 유적지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 의병전쟁이 확대·격화되던 1907~8년 전후에 연해주 한인사회에서도 항일의병이 편성되어 국내진공작전 등 활발한 항일전을 전개했다. 최재형, 이범윤, 윤인석, 홍범도, 안중근 등을 주축으로 3~4천명에 달하던 연해주의병의 근거지는 두만강에 인접한 연추(현 크라스키노)였다. 연해주의병은 1908년 7월에 대규모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여 일본군에게 큰 위협을 가했고, 한국독립운동의 활성화 및 국내·외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지역을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민족학교를 설치하여 동포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해조신문」, 「대동공보」 등을 간행하여 항일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했다.
 
 1910년에는 유인석, 이범윤, 홍범도 등이 13도 의군을 조직하여 성명회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일제의 부당성을 널리 알렸으며, 1911년 연해주 한인들은 한인자치기구로서 권업회를 조직해 한인들의 자치활동과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러시아지역 한인들은 1919년 국내·외에서 최초로 대한국민의회라는 정부를 조직했고, 문창범, 이동휘, 최재형, 김철훈 등이 중심이 되어 만주와 국내 등지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상해 임시정부와도 통합을 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축이 되었다.
 
 이어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블라디보스톡, 크라스키노 등 여러 지역에서 3.1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이처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은 일제 강점기의 국내외 독립운동가의 활동 근거지가 되었고,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조국의 독립을 위한 독립운동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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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려인 문화센터와 안중근 기념비
 
 탐사 첫날인 22일은 고려인에게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고려인 민족학교를 방문했다.
 
 이곳은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됐다가 구소련 붕괴 이후 다시 돌아온 사람들을 위한 곳으로, 고려인과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러시아 청소년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곳이다.
 
 이번 연수에 함께한 경기도시군의회의장남부권협의회 일동으로 성금 100만원을 기탁했다. 민족학교 관계자로부터 업무현황과 애로사항을 청취 후 민족학교에 한국 관광객이 방문할 시에 적극적인 지원을 당부했다.
 
 이어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여 2009년 건립된 고려인 문화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은 1860년대부터 이뤄진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와 독립운동사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뿐 아니라 고려인들을 위한 한글 교육과 문화 예술 공연장도 갖추고 있어 고려 이주민의 역사와 이주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와 바른 역사를 보고 싶은 국민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생각한다.
 
 이곳 기념관 앞뜰에는 안중근 기념비가 위치해 있다. 원래 이 기념비는 2002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에 머물고 있었던 블라디보스톡에 세워졌다. 하지만 2012년 일방적으로 철거됐으며, 무관심과 관리 소홀로 방치되어 있었지만 이후 기념관 앞뜰로 옮겨 설치됐다.
 
 고려인 문화센터는 러시아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으로 지워진 연해주 고려인들의 센터이자 한인문화의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연해주의 항일투쟁 역사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에 대한 내용이 다시금 민족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러시아 한인의 구심점인 고려인 문화센터의 원활한 경영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이 적극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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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최재형 선생님은 연해주 한인 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동시에 저명한 독립운동가이다. ‘페치카’라는 별명처럼 그는 벽난로처럼 고려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그들의 삶의 안위를 지켜주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거부였던 그는 전 재산의 대부분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면서 이범윤과 함께 연해주 의병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데 모든 거사를 계획하고 무기를 구입하는데 일조를 한 숨은 후원자였다.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이 1920년 4월 참변을 일으켰을 때 일본군에 붙잡혀 김이직, 엄주필 등과 함께 총살당해 순국했다.
 
 지난 8월 12일 최재형 선생의 고택을 해외독립운동기념관으로 새 단장해 선생의 흉상과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선생의 육신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지만, 3.1운동 100주년이자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기념비가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자리매김하길 기원해본다. 또한 어려움을 겪는 우리 동포들에게 끝까지 독립운동에 힘쓴 최재형 선생님의 헌신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발걸음을 옮겨 이상설 선생 유허비로 이동했다. 1917년 3월 2일 이곳 연해주에서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은 동지들에게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자신을 이곳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서 화장하여 강물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선생은 자신의 육체와 함께 자신이 연구하고 쓰고 입고 있던 모든 자료와 물품들을 함께 태워달라는 부탁을 하여 현재까지 선생의 업적을 연구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선생을 추모하는 광복회와 고려 학술문화재단에서 2001년 10월 18일 러시아 정부와의 협조를 통해 이곳에 비석을 세웠으며, 물이 범람하면 유허비유역까지 물이 잠긴다고 한다. 너른 벌판에 비석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어, 멀리 떨어진 독립운동가의 안타까운 운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조선의 대한독립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이상설 선생의 뜻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일 것이다.
 
4.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2일차는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했던 곳. 단지동맹기념비를 찾았다. 이 기념비는 2001년 10월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러시아 크라스키노 추카노프카 마을 강변에 세운 비석으로, 높이 4m, 폭 1m의 큰 비석과 높이와 폭이 각각 1m인 작은 비석으로 제작됐으며, 두 비석 사이에는 다른 지역에서 옮겨온 기존 기념비를 배치했다.
 
 안중근 의사와 항일투사 11명이 모여 조국의 독립을 결의한 것을 기념해 2011년 8월 4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부근 크라스키노 지역에 새로운 단지동맹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큰 비석에는 ‘1909년 3월 5일 12명이 모이다’라는 비문이, 작은 비석에는 ‘2011년 8월 4일 12명을 기억하다’라는 비문이 새겨있다.
 
 도착 후 단지동맹비에 참배를 하고, 이어 안중근 의사의 단지가 새겨진 돌에 내 손을 대보았다. 네 번째 손가락 한마디를 잘라 그 피로 ‘대한독립’ 혈서를 쓰며 항일전쟁의 의지를 다짐한 단지 동맹! 이러한 선열들의 애국충정이 있었기에 엄청난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럽게 이어져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잠시 동안 순국선열의 거룩한 헌신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빌었다. <다음호(512호)에 권영화 의장의 국외 ‘항일유적지’ 탐사 ②가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정리 김다솔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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