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평택시민과 함께하는 평택농악이 되도록 노력할 터"

■ 12세에 무동으로 농악 시작...4대 독자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중요 무형 문화재 제11-2호 예능보유자인 평택농악 보존회 김용래(73) 회장은 그의 고향인 천안 시골 장터에서 벌어진 난장을 보고 자랐다. 그는 12세에 무동으로 농악을 시작했다. 집안의 4대 독자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그러다 고 최은창 선생을 만났고, 당시 서울남사당에 있던 최은창 선생이 그를 불러들이면서 평택농악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최은창 선생이 평택농악을 만들어 85년도에 인간문화재가 지정되자 스승을 따라 평택에 뿌리를 내렸다.

 농악이 너무 좋아 12살 때 몰래 들어가 공연을 보곤 했다는 김용래 명인은 13세 때부터 무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모가 그렇게도 멋있게 보여 상모를 배우고 싶었으나 그 당시에는 귀하디 귀했던 상모가 없어 줄 끝에 돌맹이를 매달아 상모를 돌리는 연습을 하였고 예인 선배들이 잠을 자는 틈을 타 몰래 상모를 훔쳐 나와 달빛에 의지하여 상모를 돌렸다 한다.

 그렇게 한 3년을 하고 나니 상모 잘 한다는 소릴 듣기 시작했다. 16세 부터는 전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였던 이돌천 선생으로부터 법고, 전 평택농악예능보유자였던 최은창 선생으로부터는 쇳가락을 사사 받았다. 그러면서 남사당 민속극회에서 활동하던 중 1982년 평택농악으로 입단을 하면서 본격적인 평택농악 활동을 시작하였고 1985년 평택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로 지정받는데 공헌을 하였다. 평택농악에서 당대 최고의 법고잽이로서의 명성을 날렸으며 현재 평택농악의 앞차기 등 여러기술을 도입하였고 사라진 무동놀이를 복원하는데 앞장섰다. 그러던 중 2000년 7월 평택농악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받으면서 전 평택농악 예능보유자였던 최은창 선생의 뒤를 이어 현재 평택농악보존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참고로 1986년 평택농악보존회 회장을 역임한 최은창 선생은 1929년 부용학교 강습소를 졸업하고, 1930년 평궁리 두레패 상쇠로 농악을 시작하였다. 1934년 상쇠 이원보의 패에 입단하여 7년간 활동하고, 그 뒤 최은창 선생은 '민속극회 남사당'에서 남운형을 비롯해 최성구·양도일·송창선·지수문·송순갑·정일파 등 당대의 명인들과 함께 활동하며 가락치는 솜씨에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1980년 최은창 선생은 웃다리 농악과 두레농악의 연희자들을 모아 제21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평택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경연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1985년 12월 1일 평택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 제11-나호로 인정받는 등 최은창 선생은 '평택농악'을 전국에 널리 알린 장본인이자 창시자였으며, 최은창 선생은 상쇠 기능보유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 김용래 평택농악보존회 회장 인터뷰

 - 시민과 함께하는 평택농악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데

 현재 평택농악은 노인 복지 시설인 연꽃마을과 MOU를 체결하여 정기적인 봉사활동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있으며, 평택시민을 위한 일반강습을 진행하여 시민들에게 건전한 여가생활 제공과 함께 지역 문화재인 평택농악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한 평택의 문화재인 만큼 평택농악과 청소년의 미래를 위한 청소년 예술단 ‘예운’을 창단하여 운영 중입니다. 평택농악 청소년 예술단 ‘예운’은 평택농악 무동회원 출신들과 관내 평택농악 전승학교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어 현재 약 15명의 단원들이 평택농악 이수자인 문상보 단원의 지도하에 구슬땀을 흘리며 평택농악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평택농악의 창단 배경상 초창기 최은창 선생을 주축으로 전문 연희꾼들이 모여 평택농악을 발전 시켰지만, 이렇게 평택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평택의 중요 무형문화재인 평택농악을 배우고 성장하여 평택농악을 이끌어 나간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 현재 평택농악보존회의 운영상 어려운 점은

 현재 평택농악 전수회관은 팽성읍 평궁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수회관 앞으로는 아파트가 들어서있고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시민들이 방문하기에는 많은 불편함을 안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파트까지 물어물어 찾아와서도 바로 뒤편에 있는 전수회관을 찾지 못해 헤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전수회관 부지는 처음 건립당시는 문제가 없었으나 현재는 주차문제와 공간부족으로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평택농악 보유단체로서 폭넓은 전승활동을 하여야 하지만 방학중 대학생들이 전수 받으러 들어오기라도 하면 상임단원들은 연습공간이 없어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어야 하는 실정입니다.

 식당은 최대 수용인원이 16명이고 샤워시설이나 편의시설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전수시 필수사항인 숙박은 전혀 시설이 없어 연습하던 공간에 이불을 펴고 쪽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단원은 물론 전수받는 시민 및 학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평택농악을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평택농악은 평택의 대표 문화재이자 국가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택시민 및 전국민이 자긍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평택농악은 청소년 예술단 육성 및 전승학교 운영을 통하여 평택의 인재 배출에 힘쓰고 있습니다. 평택농악에는 화려한 판굿과 고사굿, 무동놀이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게 우리의 고유한 보유 굿을 지키고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1년 전부터 상임단원들이 창작 모듬북 작품을 준비하여 올해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앞으로 판굿은 더욱 화려하게 하고 일부 사라진 무동놀이를 복원시켜 시민들과 관객들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활동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현재 국가 차원으로 문화재청에서 진행중인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세계 속의 평택농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평택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관객 없는 연희판은 존재하지 않듯이 평택농악은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아직까지 미약하지만 평택농악은 조금 더 시민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많은 행사와 사업을 기획하여 시민들을 찾아갈 것이며 함께 할 것입니다.

 우리지역 유일한 국가지정 중요 무형 문화재인 평택농악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시민들의 함성과 박수로 보답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겠습니다. 아울러 4월 28일부터 한국 소리터 농악마을에서 시작 예정인 '2013 평택농악 상설공연'에 많은 관심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3년 평택농악 상설공연'은 1부(14:00~15:00)와 2부(16:00~17:00)로 나뉘며 1부에는 상임단원들의 모듬북, 판굿, 체험 등으로 진행되며 2부에는 평택농악 전회원의 고사굿, 판굿 등이 펼쳐집니다. 시민 여러분들에게 좋은 공연 보여드리기 위해 저를 포함한 단원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연영 기자
ptl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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