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이건일(도서출판 모든사람 대표/사회복지사)
 
이건일의 복지탐구.jpg
 딱지는 즐거운 놀이도구다. 어렸을 적 해본 딱지치기는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놀이 방법 중 하나다. 딱지치기라 함은 2명 이상이 바닥에 자신의 딱지를 내려놓고 서로 돌아가면서 다른 딱지로 쳐서 뒤집으면 그 딱지를 가질 수 있는 방식의 놀이다. 초등학교 시절 만들었던 딱지를 기억해보면 신문이나 두꺼운 도화지를 활용하여 만들었다. 두 장의 긴 종이를 십자 형태로 두고 삐져나오는 4개의 면을 90도로 접은 후 서로 안쪽으로 교차하여 끼워 넣으면 놀이 딱지가 된다.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딱지를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두꺼운 종이를 구하거나 좋아하는 만화 주인공의 그림을 정성껏 그리곤 했다.
 
 딱지의 재료가 꼭 한정된 것은 아니다. 다 먹은 우유팩을 사용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200ml의 용량을 가진 우유팩을 딱지로 만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리 흔하지 않았던 1,000ml의 우유팩이나 음료수 팩을 발견하면 횡재한 기분으로 대왕 딱지를 만들었다. 대왕 딱지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주로 공격용으로 많이 쓰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모든 놀이용 딱지는 자원을 재활용해서 만들었다. 다 읽고 버린 신문이나 이미 한번 쓴 종이, 다 먹은 음료수 팩으로 만들었으니 별도로 돈이 들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정성과 시간만 있으면 그 어떤 아이들도 딱지를 만들 수 있었고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딱지놀이에 참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은 단지 딱지놀이에 흥미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도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딱지치기가 한창이다. 다만 딱지의 모양이 달라졌다. 종이 딱지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플라스틱 딱지가 등장했다. 어렸을 적 손수 정성껏 그리며 특별한 딱지를 만들었던 때와는 달리 이미 그 플라스틱 딱지는 최근에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들의 모양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원하는 모양의 딱지를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딱지놀이의 방식은 예전과 똑같다. 바닥에 있는 딱지를 다른 딱지로 쳐서 뒤집으면 그것을 가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딱지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보다는 구경하는 아이들이 더욱 많다. 이런 아이들의 대부분은 가지고 있는 딱지를 방금 모두 잃었거나 이미 전부터 잃어서 딱지놀이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다. 예전 같았으면 집으로 뛰어가 신문이나 다른 종이를 찾아서 만들어 왔을 테지만 지금은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없으면 딱지를 살수 없고, 딱지를 살수 없으면 놀이에 낄 수가 없다.
 
 딱지의 가격은 작은 것이 500원부터 시작이다. 조금 큰 중형 딱지는 1,000원이며 대형 딱지의 경우 3,000원까지 한다. 아이들의 대부분은 대형 딱지를 선호한다. 그리고 그것을 딱지놀이 현장에 가져와 한쪽에 수북이 쌓아놓은 후 딱지를 걸고 진짜 승부를 한다.
 
 ‘놀이’가 아니라 ‘도박’이다.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는 놀이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했거나 돈 있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도박이 되었다.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즐기는 화투판도 판돈이 점당 10원이다. 아이들은 딱지를 얻기 위해 힘껏 내리치는 5초 남짓의 순간에 3,000원의 가치를 취한다. 그것도 여러 장이다. 딱지를 모두 잃은 아이들은 부모에게 돌아와 딱지를 사달라고 졸라댄다. 한두 번 사다 줬지만 모이고 모인 딱지 구입 가격에 그만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아이들을 설득한다. 설득당한 아이들은 더 이상 딱지놀이에 낄 수 없다. 그 주변을 맴도는 구경꾼이 된다.
 
 아이들의 순수한 딱지놀이는 자본주의에 의해 잠식되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던 놀이는 특별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재활용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딱지는 돈으로 구입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딱지를 만들며 즐거운 상상을 하던 아이는 이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모양에 만족하며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패배하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럽게 익힌다. 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다. 이는 분명 잘못되었다.
 
 자본주의 속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의 부모 세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아이들에게 이제는 경쟁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쟁력’이 아니라 협력하고 협동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쟁력’에 대해 진지하게 가르쳐 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특별한 누군가를 위함이 아니라 나와 나를 둘러싼 모두를 위하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완성 될 것이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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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일의 복지탐구] 딱지놀이에서 보는 자본주의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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