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이건일(평택남부노인복지관 과장)
 
이건일의 복지탐구.jpg
  초등학교 때 ‘도덕’이라는 과목을 배웠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쫓아가야할 근본 같은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공동체 유지를 위해서 당연히 생각하고 행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윤리’라는 것을 배웠다. 당시에 윤리는 단지 도덕의 다른 말인 줄 알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윤리’는 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고 지켜야 하는 것들이었다. 근본적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도덕과는 다르게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해 행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케이시 웍스, 동녘, 2016)’라는 책을 접하게 됨으로써 ‘노동윤리’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해 봤다. 노동이라는 단어에 윤리를 더하니 그 사회의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된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에게는 요구되었던 윤리는 근면한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로자’의 의미다. 현대사회에서는 노동윤리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까지 하도록 요구한다.
 
  우리사회는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일을 하면 우대받는다.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할 정도라면 일이 그 사람의 인생에 전부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이야기 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저녁에 ‘일’이 있는 삶을 요구받는다. 우리가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일을 하기 위해 사는지 아니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 일을 하는지 말이다.  
 
  이런 노동윤리는 가정에서도 발견된다. 우리사회가 정해놓은 ‘가족윤리’는 가정 안에서의 노동은 당연히 ‘무급’이라는데 있다. 가정 안의 일이니 가정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규정된 ‘가족윤리’의 틀을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다른 방식이 보인다. 가사노동을 임금노동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직장에서만 노동을 하고 가정 내에서 노동을 하지 않으려면 가사 노동을 해줄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 이때는 비용이 발생한다. 이 일을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서 우리사회가 만들어 놓은 노동 시간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주 40시간, 일 8시간이 기본 노동시간이라고 정해진지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이마저도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의 기본 노동시간은 남자가 외부에서 노동을 하고 여자는 가사노동을 한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졌다. 꼭 성별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가사노동이 배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노동시간이라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사회활동(흔히 일하는 여성)을 권한다. 하루 최소 8시간을 일하고 어쩔 때는 추가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온다. 늦은 가사노동을 하고 나면 수면시간 외에는 없다. 저녁이 없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의 삶은 늘 전쟁이다. 
 
  한사람의 노동은 다른 사람의 가사노동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이것을 가정 안에서 책임져왔다. 우리의 일로 여겼고, 우리가 감당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정윤리다. 우리가 인간다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일과 여가가 적절하게 조화된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윤리’와 ‘가족윤리’에 갇혀 있는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가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단지 윤리를 지키는 것이 사회정의라고 생각한다.
 
  앞서 도덕과 윤리는 다르다고 했다. 도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윤리는 다르다. 윤리는 헤게모니(Hegemonie)와 같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지를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윤리를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한다면 다양하고 즐거운 상상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 자체가 아니라 여가를 위해서다. 그렇기 위해서는 노동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감추어진 노동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 가치에 정당한 임금을 부여해 줘야 한다. 
 
  우리는 늘 유토피아를 꿈꾼다. 우리가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유토피아는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단지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정당하게 일을 하고 그 만큼의 여가를 보장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복지국가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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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일의 복지탐구] 도덕과 윤리의 개념으로 보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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