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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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한 만큼 한눈에 정갈한 느낌의 평택대학교 캠퍼스. 해마다 봄철이면 흐무러지게 피어난 벚꽃에 파묻혀 교정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 사이 군데군데 연녹색으로 채색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 가운데 한 중년 부부가 있었다. 벌써 강산이 두 번이나 뒤바뀐 세월을 거슬러 올라 필자가 소환한 풍경화 중 한 폭이다. 여기저기 자리한 벤치에서는 풋풋한 새내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웠고, 아직은 햇발이 살아있을 무렵 발랄한 몸짓을 곁들인 금잔디 위에선 몇몇이 생음악과 어우러진 채 뭇 시선을 끌어모았다. 언뜻언뜻 샛별처럼 반짝이던 강의실 불빛을 떠올리노라면 이른바 세파에 얼룩진 흔적이라곤 좀체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 대학이란 상아탑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처소라고 힘차게 외친들 누구 하나 감히 토를 달 수 있으랴. 적어도 몹쓸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pandemic)이 온 인류의 일상을 송두리째 옭아매기 전까지는 그랬다.

  20년 전 우리 부부는 평택대학교 대학원생이었다. 남편은 신학대학원(M.Div.)에서 주경야독을 감행했고, 아내는 당차게 상담대학원 제1기생으로 등록했다. 나 홀로 월요일과 화요일 저녁을 지키다가 목요일과 금요일이면 둘이서 함께 듣는 강좌로 만나 동료들로부터 은근한 시샘을 받는가 하면, 한때나마 캠퍼스 커플을 부러워했기에 남모를 행복감에 젖어 든 시간이기도 했다. 수강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날그날 배운 내용을 가볍게 되짚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리는 특권을 음미할 때면 연일 강행군으로 쌓인 피로감마저 잊은 채 주신 감사의 조건을 내놓고 구주 예수님을 맘껏 찬양하곤 하였다. 중년에 막 접어든 우릴 보고 지레 시시콜콜한 잡담쯤이나 나누겠거니 어림짐작한다면 이는 과녁을 한참 빗나간 화살에 불과하다. 우리 둘이 건네는 대화는 제법 신선한 제재들로 채워져 연신 팽팽한 연줄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지곤 했다. 이따금 묵직한 화제에 푹 빠진 채 교통 신호등을 깜박할 만치 여느 젊은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언 초로(初老)의 육십 대 초중반에 접어든 지금도 그 특유의 흐름만큼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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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어선신학교를 거쳐 비록 평택대학교라는 이름으로 여태껏 이렇다 할 명성은 얻지 못했으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기독교 신앙을 지닌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학문의 전당으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가짐에서 향후 대학 발전을 위한 몇 가지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평택대학교는 지역사회에 기여함으로써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시다시피 우리 학교의 뿌리는 ‘피어선성경학원’이다. 20세기 초 아더 피어슨(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 선교사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려고 세운 배움터의 존립 근거는 성경에 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 43:19)라는 말씀을 통해 전한 구원의 진리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구성원 전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정례적으로 수행하는 예배의식(chapel)을 포함해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과정으로 신실하게 가르침으로써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실천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복음 사역은 연약한 사람을 들어 쓰시되 결국 사망에서 생명으로 돌아서게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복음 교육에 대한 열쇠는 캠퍼스 교회의 목회자와 가르치는 교수진이 쥐고 있다. 채플 참석이 자칫 믿음을 강요하는 양상을 띠어서는 목표지점에 이를 수 없을뿐더러,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로마서 10:10)라는 말씀에 합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한국교회에 발흥한 세 번의 부흥운동(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909년 백만인구령운동) 역시 갈급한 심령에 회개의 회오리바람이 일었기에 허락하신 일이었다. 필자가 박용규의 <한국교회와 민족을 살린 평양대부흥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평안남도 겨울 남자 도사경회(都査經會)가 한국교회와 민족사회를 갱신하는 데 견인차였다. 성령의 거센 불길이 평양 일대를 뒤덮기 직전 피어슨 설립자는 근대 복음주의 선교운동의 거장답게 그곳에 머물렀다. 하지만 미국의 제1차 대각성운동의 주역인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의 말처럼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일 뿐이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582호)에는 ‘종립 사학을 위한 자강론 - 내부에 갇힌 학사행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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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종립 사학을 위한 자강론 ‘눈동자에 비친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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