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시인
봄날이었지
벛꽃 그늘 속에서 수갑을 찬
나를 닮은 너를 보았지
바람이 불자 한 무더기의 꽃잎들이 나 뒹굴고
그럴 때마다 너의 윤곽은 뚜렷해져
내가 너 아닐까하는 의심을 해보았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간이역을 스쳐가는 귀향객의 눈빛으로
봄날이 아파해서 너무나 아파해서
죽음을 도와줬다고 너는 자백했지
벚꽃 그늘 속으로 바람처럼 불어간 너를,
군중에 떠밀리며 훔쳐보는 내 앞으로
꽃잎은 저 홀로 흩날려 다가왔지
꽃나무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단지 사람을 닮은, 사람 같은 나뭇가지에
열병처럼 도진 꽃 한 송이 걸었을 뿐인데
피어나는 꽃에는 마음이 약하고
지는 꽃에만 한없이 잔인한 사월이었지
정말 봄날 같지 않던 봄날이었지.
■ 작가 프로필
경기도 평택 출생. 200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집 <투명인간> <고흐의 사람들> 외 저서 <이기적인 시와 이기적인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