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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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춘삼월 한 달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남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 주위에서는 뭔가 어색하지 않냐고들 물어왔습니다. 저는 외려 의아해하며 아주 자연스럽다고 화답했습니다. 내용인즉슨 기력이 왕성한 남자애들인지라 드세기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걱정이었습니다. 일부의 우려를 잠재우기라도 하듯 나는 마치 커다란 날개를 매단 비마(飛馬)처럼 창공을 향해 드높이 비상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나란 존재가 어떻게 고귀한 교단에 서게 됐는지를 한껏 체감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배경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학교도서관에서 머문 세월이 있었습니다. 힘겨운 시간을 견디며 직장과 학업을 병행한 끝에 얻어낸 결과였기에 한가로이 해찰할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떠올리면 무려 5년여를 견디며 이겨낸 분초의 축적이 있었습니다.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결단코 생계를 놓지 않은 것 역시 은혜였습니다.

  돌이켜보건대 꼭두새벽부터 자정이 가깝도록 강행군한 세월은 그야말로 버거운 기간이었습니다. 잠이 턱없이 모자라 심신은 늘 지쳐 있었습니다. 급작스레 시력이 나빠져 급기야는 안경을 코에 걸쳐야 했습니다. 문득 단 세 명 안에 들어 입학한 대학원 강의실에서 만났던 학우들이 생각납니다. 목록구성은 물론 내용작성조차 변변히 지도받지 못하고 고군분투하며 썼던 학위논문은 나 홀로였습니다. 그 통과의례가 없었던들 오늘날 저를 위한 자격증은 아마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곧이어 새 학기에 전격적으로 교단에 세워주신 그 감개무량을 어찌 다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토록 아파하며 애써 추구한 연고를 아시는 주님께서 어여삐 여겨주시므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엿이 교사로 세워주신 은혜를 까맣게 잊은 채 책무를 소홀히 한다면 단단히 혼쭐이 날 일입니다. 제게 교직이란 입버릇처럼 내뱉는 일회성 구호라거나 숭고한 소명이라며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여타 단순한 노무직이라고 해서 그 일마저 소중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인류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한 직업의 귀천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 가운데 교사라는 직책이야말로 청지기적 사명을 띄고 있다는 시각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쳐 사람을 만드는 일이 그리 간단한 작업은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고로 간단없는 연찬을 통하여 자신을 갈고 닦을 책무가 교사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촌각이라도 성찰 없이는 올바로 풀리지 않을 일이 교직에는 많으니까요. 그러니 남들도 교직을 두고 그렇게들 입방아를 찧는 것이겠지요. 교육 현장이 이처럼 혼탁해 가는 시대일수록 우리 교직자들이 먼저 힘써 창조주를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전적인 인도하심을 멀리한 채 내 힘으로 교단에서 꿋꿋이 버티겠다는 발상 자체가 불손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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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에 보태 우리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매 그동안 꽉 막혔던 내 글월의 빗장을 단번에 풀어 주셨습니다. 해를 넘기기 전 고대하던 문단에 기꺼이 이름 석 자를 등재해 주셨습니다. 불과 300여 일 만에 무려 2,000쪽에 달하는 탈고를 도우심으로 산문집을 두 권이나 펴내게 하셨습니다. 생각할수록 경이로운 전개였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학기 중 빡빡한 대학원의 일정에도 여름과 겨울 방학을 활용한 290시간의 전문상담교사 과정까지 밟게 하셨을뿐더러 언감생심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산뜻한 홈페이지까지 유능한 동생의 도움으로 열게 하셨습니다. 이를테면 오랜 세월 속절없이 무주택 신세로 떠돌다가 남부럽잖은 내 집을 장만하여 알차게 입주한 터입니다. 이제는 명실공히 나의 자료실을 새로이 개관했으니 차곡차곡 주옥같은 작품들을 채우고 쟁여둘 일만 남았습니다. 

  일련의 일들이야말로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은혜의 결과가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고로 이곳이야말로 오롯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주신 분께서 도로 거둬 가신들 읍소할 거리조차 없겠습니다. 기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니면 선한 사업은 아닌 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루어가는 하나하나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으로 각별한 뜻을 담아 마감한 날들이었습니다. 내 생애의 전환점이라고 기록해도 될성부른 한 해였습니다. 그러니 더욱 빌립보서 4:7의 말씀에 입각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내내 지켜주시기를 전심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 프로필

- 고교생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시조집·기행집 등을 펴냈습니다.

- 평택에서 기고 활동과 기독교 철학박사(Ph.D.)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꾸립니다.

- <평택자치신문>에 “세상사는 이야기”를 12년째 연재하는 중입니다.

※ 다음호(582호)에는 ‘종립 사학을 위한 자강론 - 눈동자에 비친 캠퍼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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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은혜로 엮어온 나날 ‘교단에 감사를 담은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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