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군인 황제 시기, 이민족 침입과 연이은 내전으로 쇠퇴 가속화


김희태(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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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했다. 특히 강대국이라 불리던 나라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교훈의 역사가 되곤 하는데, 가령 현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로마 제국과 대입해볼 수 있다. 미국이나 로마 제국은 강대국의 지위에 있었다는 점 이외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로 미국이나 로마는 다민족 국가로, 공통적으로 대외적으로 열려 있는 시민권(市民權)을 통해 확장성을 높인 경우다. 

 실제 도시국가로 출발했던 로마가 이탈리아를 넘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건 개방적인 시민권 제도가 한 몫 했는데, 당시에는 인구가 곧 국력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은 미국에서도 확인이 된다. 미국은 우리에게도 불과 반세기 전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는 곳이었다. 다양한 인종들이 미국으로 모여들어 용광로처럼 미국의 역동성을 키울 수 있었던 환경은 개방적인 시민권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견해다. 

 두 번째로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이나 로마는 기축통화의 발행국이었다. 여기서 기축통화(基軸通貨)는 국가 간에 거래되는 화폐로, 초창기 물물교환의 형식에서 교역의 확대에 따라 금과 은처럼 귀금속에 신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화폐를 주조해 거래했다. 성경에도 나오는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에 등장한 화폐인 데나리우스(데나리온, Denarius)는 로마의 은화로, 성경 속 표현을 빌리자면 노동자의 하루 일당의 가치를 지녔다. 여기서 아우구스투스가 확립한 로마의 화폐 체계를 보면 금화(아우레우스, Aureus), 은화(데나리우스, Denarius), 동화(세스테르티우스/Sestertius, 듀폰디우스/Dupondius, 아스/As)로 구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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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황제의 데나리우스 은화

 여기서 화폐의 교환 가치는 크게 데나리우스가 기준점이 된다. 즉 동화인 세스테르티우스 4개, 듀폰디우스 8개, 아스 16개의 가치가 데나리우스 1개와 가치가 동일한 것이다. 반대로 데나리우스 25개는 금화인 아우레우스 1개와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 가령 현재의 하루 노동자 임금을 평균 10만원이라 가정할 경우 금화 1개의 가치는 우리 돈 250만원이 되는 셈이니 실생활에서 이용하기에는 큰 금액에 속한다. 때문에 이 시기 금화는 실생활 보다는 주로 무역 결제용이나 기타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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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화의 뒷면, 해당 도안은 유대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발행된 것으로, 이러한 방식은 황제의 치적이나 선전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흥미로운 건 강대국과 기축통화의 상관관계에서 급격한 화폐 가치의 변동이 있는 경우가 확인이 되는 점이다. 이 경우 화폐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어떤 사건들이 일어난 경우로, 이후 강대국의 경제는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데나리우스의 화폐 가치 변화와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로마 제국의 쇠퇴를 이해한다면 오늘날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에 나름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 데나리우스, 은 함유량의 변화와 로마 제국의 쇠퇴

 로마의 화폐체계에 있어 근간이 되는 데나리우스는 공화정 시기부터 만들어졌는데, 이 시기 로마는 지중해로 세력을 확산하던 시기였고, 지속적인 은의 유입이 있었다. 그랬기에 이 시기의 데나리우스의 순도는 100%로, 국가 간의 교역에 있어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런데 네로(Nero, 37~68) 황제를 시작으로 은화에 구리를 섞는 방식으로 화폐 개혁을 하면서 은의 함유량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재정 지출은 많아진 반면 수입은 점점 감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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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황제의 세스테르티우스 동화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크게 ▶빵과 서커스 ▶넓은 영토를 방위할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재원 ▶무역에서의 적자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기본적으로 로마 황제는 전제 군주의 형태가 아닌 원로원과 시민, 군대의 승인에 의해 황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빵과 서커스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고, 넓은 영토를 방어해야 했다는 점 역시 재정 지출이 많아진 요인이다. 단적으로 티베리우스(Tiberius, B.C 42~A.D 37) 황제 시기 긴축 재정으로 상당량의 흑자 재정을 물려줬지만, 칼리굴라(Caligula, 12~41) 황제 치세 때 인기 유지를 위해 재정을 쓴 결과 그의 치세 때 국고가 바닥나기에 이른다. 

 결국 여러 요인들로 인해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데나리우스의 은 함유량을 줄이게 되고, 더 많은 화폐의 발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화폐의 발행량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Inflation)을 부른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과도 같다. 물론 네로 이후 로마의 전성기라 불리는 오현제(五賢帝,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시기를 말한다) 시기에는 이런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3세기의 위기라고 부르는 군인 황제 시기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민족의 침입과 함께 황제의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연이은 내전과 혼란은 로마의 쇠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시기 데나리우스를 대체할 안토니니아누스(Antoninianus) 은화가 발행되었는데, 명목상 두 배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안토니니아누스 은화가 빠르게 데나리우스를 대체했지만 정작 은 함유량은 계속 떨어졌다. 특히 갈리에누스(Gallienus, ?~268) 황제 시기가 되면 은 함유량이 4%까지 떨어지게 되는데, 이건 동화를 은물에 담근 수준으로, 은화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저질 은화가 발행되던 시기는 로마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절과 서로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보여주듯 갈리에누스가 재위하던 시절에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이 로마로부터 떨어져나갔다. 그야말로 로마판 삼국지가 펼쳐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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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의 아스 동화

 이렇게 은의 함유량이 줄어들고, 화폐의 발행량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시장의 왜곡과 교란이 생기게 된다.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물가의 상승과 가처분 소득의 감소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로마 제국의 초기, 정상적으로 화폐 체계가 작동되었을 때만해도 데나리우스와 하위 동전들로 충분히 통용이 되던 시장은 3세기의 위기 시대가 되면서 은화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저질 은화를 잔뜩 가지고 가야 했을 것이다. 현재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와 짐바브웨처럼 말이다. 

 한편 시장의 신뢰를 상실한 은과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일본 에도막부 때 조선으로 부터 인삼을 수입했는데, 무역대금을 은으로 결제했다. 조선에 있어 인삼은 알짜배기이자 대표적인 수출 상품이었다. 그런데 일본 내에서 통용되는 은의 함유량이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졌기에, 나중에 조선에서는 이런 은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일본에서는 인삼의 무역결제를 위한 은을 따로 만들게 되는데, 바로 인삼대왕고은(人蔘代王古銀)이었다. 

 당연히 로마 제국으로서도 이런 화폐 체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기에 훗날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244~312) 황제는 순도 100%의 아르겐테우스(Argenteus) 은화를 발행했다. 그런데 정작 새로 만든 은화는 시장에서 돌지 않았다.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이라 부르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 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의 대표적인 사례다. 결과적으로 은화가 시장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 272~337)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은화를 대신할 솔리두스(solidus) 금화를 발행했다. 후기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금화인 솔리두스는 이후 새로운 기축통화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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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부스(Probus) 황제의 안토니니아누스 은화, 은도금의 형태로 표면에 은이 일부 남아 있다.

■ 현재의 기축통화인 달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처럼 데나리우스 미래는 곧 달러(Dollar)의 미래를 연상하게 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미국을 초강대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서 44개국이 모여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데 동의하고, 동시에 달러를 금과 연결하는 금 태환 제도가 실시되었다. 이를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라고도 하는데, 이 시기 금 1온스는 35달러로 고정이 되었고, 달러를 들고 가면 액수만큼 미국은 금을 주어야 했다. 실제 지금의 달러와 금 태환이 가능한 달러는 그 형태나 문구가 달랐다. 또한 ‘달러=금’이 연동이 되었기에 달러는 무제한 증식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달러의 화폐가치를 떨어뜨리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는데,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이었다. 전쟁을 수행하면서 화폐의 발행이 많아짐에 따라 달러는 신뢰를 잃어버렸다. 결국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는 발길 속에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해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더 이상 금으로 바꾸어 줄 수 없다며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금과의 연동에서 벗어난 달러는 이후 무제한 증식이 가능해졌다. 이렇게만 보면 ‘데나리우스=달러’는 같은 운명을 겪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달러는 기축통화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연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같은 운명을 겪게 될까? 어떻게 보면 무제한적으로 증식하고 있는 달러가 신뢰의 상실과 화폐 가치의 하락을 겪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기축통화에 대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며, 이는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미중 무역 분쟁과 같은 갈등 구조가 다시금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저 작은 동전 하나를 통해서 세계사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나름 흥미롭게 바라볼 지점이다.

★자치돌이★ 기자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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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 데나리우스의 은 함유량 변화와 로마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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