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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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행이 발길을 옮긴 데는 ‘보름스성당’. 웅장하고 고풍스러웠다. 그 역사의 현장에 큰 철제 신발이 가로놓여있었다. 저마다 신어보며 루터의 심장을 느껴 봤다. 독일에서 ‘그 신발은 나에게 크다.’라는 건 관용적 표현이다. 루터를 한껏 존경한다는 속담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높이는 건 위험천만이다. 힘껏 그릇을 준비하되 들어 쓰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마21:3)가 정답이다. 형장의 설치물도 있었다. 굳게 닫힌 지하 입구가 보였다. 조그만 원형 꽃밭에 눈길이 갔다. 나는 수수한 빛깔을 좋아한다. 문득 성당 내부가 궁금해졌다. 구부정한 노인이 4유로씩을 요구했다. 별다른 요금체계는 없는 듯했다. 유적 발굴터를 보존한 전시관으로 갔다. 고맙게도 화장실이 있었다. 부슬비가 습한 바람을 몰고 왔다. 잠시 우산을 접어야 했다. 단체 사진을 남기기 위한 밑그림. 아들 머리에 아비의 손을 얹었다. “주여,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리라!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로 내닫는 길. 유유히 강물이 흘렀다. 흔들리는 차창을 따라 물결이 출렁였다. 저 건너에 돔 성당이 나타났다. 강변을 따라 마냥 걷고 싶었다. 강폭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는 늘 붐빈다. 하이델베르크 시가지는 그래서 심심치 않다. 곧바로 성문을 향해 올랐다. 군데군데 조릿대가 있어 가파른 줄도 몰랐다. 품위를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채. 구도심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독일다운 풍경화. 네카강 건너편 하일리겐 산은 한폭의 병풍이다. 그 정상 부근에 원형극장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들었다. 구도심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어디에 구도를 잡아도 작품이다. 이젠 숨은 그림 찾기. 눈길을 한가운데로 돌렸다. 비에 젖은 흙길마저 정겹다. 오래된 나뭇가지와 비둘기 떼는 늘 동무다. 아픈 속살을 드러낸 채 듬성듬성 풀이 돋아난 담장. 망가진 담벼락 구석을 놔둔 게 옳았다. 고적 보존의 미학을 목격한 터다. 거기 부서진 세월이 묻어있다. 조각난 민초의 삶이 묻혀있다. 망가진 복음의 기록이 벽돌 사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간이 천막이나 임시 포장을 치고 채소 파는 진열대를 잠시 둘러봤다. 농민과 소비자를 잇는 직거래 장터. 지나친 중간 마진을 줄여야 농촌이 살고 소시민이 자족한다. 이런 수급 형태가 우리나라에도 하루빨리 착근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렇다면 독일에는 정책적 실패가 없을까?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대표적으로 교사 수급의 오류를 들었다. 만성적으로 교사 부족에 시달린다니 의외였다. 교사의 처우가 좋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데도 중장기적인 교원양성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자격증을 가진 인적 자원이 태부족하다는 하소연이었다. 갈수록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속절없이 고등실업자가 쌓여만 가는 한국의 실정과는 실로 극지점에 놓인 형국이었다. 독일과의 FTA 체결을 통해 실력을 갖춘 적체 교사들의 활로로 활용할 방안은 없을까 잠시 무거운 뇌파가 요동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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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마차(상호)에서 한식을 들었다. 소반(상호)에 견줄 바 아니었다. 입술에 착착 감기는 부침개에 얼큰한 김치찌개로 빈속을 달랬다. 거기서 불현듯 생각난 게 있었다. 취업비자가 아닌 학생비자를 받은 알바생을 썼다가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있단다. 독일식 법 집행은 추상같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볼 차례다. 건물과 건물 사이 개울물이 맑았다. 하늘거리는 물풀은 언제 보아도 귀하다. 실가지를 늘어뜨린 거목의 자태는 자못 근엄하다. 유독 공원을 자주 찾는 건 그래서다. 신문을 펼친 철제 노인이 앉아있었다. 이끼 낀 화분에 담긴 풀꽃을 닮았다. 성당에는 하나같이 성물들을 매달았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알고 싶었다. 단과대학별 건물들마다 굳게 닫혀있었다. 우리네 캠퍼스 개념은 아니니 딱히 찾아들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냥 말기는 아까웠다. 돌아볼 방안을 궁리했다. 골목길을 따라 도서관이 나왔다. 흘끔 보니 뒤따라 가면 될성싶었다. 입구에 우산을 펼친 채였다. 복도에 설치한 전시물을 봤다. 박물관 같은 자료실을 기웃거렸다. 간신히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다 나왔다. 오래된 역사는 잊기로 했다. 별 것 아닌 게 1368년이랬다. 중간에 유니세프 지부가 있었다. 프리드리히-에버트 그룬트슐레 간판도 봤다. 생각은 온통 딴 데 있었다. 네 식구를 위한 깜짝 선물 준비령 발령. 경계경보가 울리고 가게를 찾았다. 달랑 하나 남은 핑크빛 케이크로 인해 그날 밤은 온 집안이 행복했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56호)에는 ‘독일 교육 탐방기 : 성도의 은혜로운 교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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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독일 교육 탐방기 : 고풍스런 성채의 풍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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