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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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어떤 박식한 성적(性的) 지식이나 해박한 성(性)의 역사를 논하려 들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 말씀을 기준 삼아 남자와 여자의 복락(福樂)이라는 관점에서, 성이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크고 비밀한 선물임을 가능한 한 품위를 더해 부각해 보렵니다. 즉 필자의 결혼생활을 통하여 알고 누리는 부분에 한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부부의 성을 한껏 옹호하려는 시도입니다. 그것이 필자가 일각에서 한사코 뜨거운 감자로만 취급하려는 성의 문제를 어렵사리 글감으로 택한 연유입니다.
 
  보편적 한국인들에게 성의 문제는 아직 민감하기 그지없는 담론일 겁니다. 저 역시 군자(君子) 근처에도 못 가본 단지 성인(成人)의 한 사람으로서 쑥스럽게 던질 수밖에 없는 화두임에 틀림없으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세상에서 성처럼 양면성이 극명한 주제도 많지는 않겠지요. 그만큼 성이란 게 허용된 범주에서 이루어지면 심히 아름다운 반면, 선뜻 법도를 어기고 저지르는 불장난일수록 한없이 추해지기 때문입니다. 자고이래 선악과 진위(眞僞)를 수반하지 않은 이면사는 없었으니까요.
 
  인간에게 주어진 욕망 가운데 오늘날 성적 자기 결정권만큼 고삐가 풀려버린 사안 또한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으레 일탈을 좋아해서 좀체 거룩한 걸 꺼려하는 못된 타락성이 내면 깊숙이 못 박혀 있거든요. 혹자는 이를 오욕칠정의 자연스런 분출로 치부하기도 하고, 은근히 그 몰골을 추종하는 행태마저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골백번 아니 될 말입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지요. 무릇 지킬 만한 가치를 고수하는 법도가 그리운 요즘입니다. 거기서 열린 열매야말로 빛나는 금도(金桃)이기에 그렇습니다.
 
  잘라 말해 성은 근원적으로 법적 부부에게만 허용된 성역(聖域)입니다. 이는 종교적 신앙심이기 이전에 양심의 문제라고 봅니다. 부부 중 어느 쪽도 침소를 더럽혀서는 안 되는 절대선(絶對善)이지요. 성이 향락이라는 이름을 빌려 날개를 달면 본격적으로 악의 소굴로 접어들었다고 보아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굳이 폐지당한 간통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유책 사유를 송두리째 떠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로의 관계에 금갈 위험성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옛말처럼 열 처녀 마다할 남정네는 없거든요. 알몸의 신비가 사라지는 순간 쉬이 싫증을 내는 게 뭇 사내들의 속성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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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성의 사용에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주의 축복은 합법적인 가정 안에 허용한 절대명령이지요. 제아무리 가까운 내외간일지라도 연약한 사람인지라 때로는 권태롭고 건조해질 수 있으니 적절한 희락을 통해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라는 원리인 겁니다. 자신을 빼닮은 분신을 돌보는 기쁨은 그야말로 덤이자 대박이죠. 성이란 신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로되 심신을 올바로 제어할 때 완수할 수 있는 미묘한 몫이라고 사려합니다.
 
  응당 성은 해맑은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부부 중 어느 일방의 강요로 흘러가면 곤란하지요. 혼인한 이상 상대를 백안시한 채 자기를 고집하지 말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육체가 영혼을 만나 서로를 만족시키는 교감의 교향악이니까요. 때 이르게 잠자리가 우스워지면 관계성에 균열이 간 겁니다. 건강한 소통에 병든 조짐으로 봐도 무방하지요. 평소 저변(低邊)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한 반증이거든요. 요긴할 때마다 내면적 교류를 외면했을 거예요. 상대를 우선하며 흡족히 베푸는 사랑이라야 샘물처럼 솟아난답니다. 그것이 상식이고 교양이지요.
 
  가정에서 나타난 부모의 성문화는 자연스레 자녀들에게 옮겨가기 마련이지요. 알게 모르게 보고 배우는 가정교육의 근간은 어른의 뒷모습이기에 그렇습니다. 쑥스럽지만 적어도 우리 집의 풍경은 여기에 근접했다고 자부하고 싶군요. 물론 혼인 초기의 시행착오는 얼마큼 있었지만요. 넌지시, 그러나 그윽이 사랑하며 사는 행복한 부모의 정서를 통해 흩날리는 애정의 향기를 맡으며 자라나는 후세대가 귀여운 2세들이잖아요. 이건 목청을 높여 강조하거나 작정하고 가르친다고 해서 이뤄질 사안은 아니라고 봐요.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41호)에는 ‘성(性)은 부부의 성(城) - 부부라는 이름의 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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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성(性)은 부부의 성(城) ‘신비로운 창조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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