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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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마다 열심히 살다 어렵사리 짬을 낸 직장인들.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 구성원들 간에 대화가 통했다. 현란한 말솜씨를 지닌 가이드는 소위 이대 나온 여자. 그녀의 얘기를 들을수록 가톨릭이 지배하는 지역에는 미신이 창궐한다. 그토록 닭요리를 좋아하는 데도 까닭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닭이 꼬꼬댁하고 우는 것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면 자신의 결백을 밝혀 주리라 믿는다는 것. 기실 예서제서 울어대는 놈을 놓고 푼수떼기로 응대할망정 화신으로 대우하는 품이 적이 우스꽝스러울 텐데 말이다. 아마 베드로가 들은 새벽닭과도 맥이 닿았을 터다. 그러는 사이 리스본 시내 고층아파트가 보였다. 야경이라고 부르기에는 흐릿한 불빛. 불야성이라는 말이야말로 우리나라에나 적합한 용어이렷다. 그 유명한 벤피카 축구경기장을 보니 불세출의 영웅 에우제비오가 떠오른다. 저녁은 중국식. 역시나 닭요리는 빠지지 않았고 호텔은 어제와 같은 COSTA DE CAPARICA. 복도가 지나치게 어두워 물으니 원자력은 아예 없고 수력 70%, 화력 10%, 그밖에는 풍력 등으로 충당한단다. 밤 10시 이후에는 화장실 물도 안 내린다는 곳. 그 관습을 존중하며 기도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더운 방안공기로 인해 뒤척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좀 이른 시각에 식당으로 내려가 신선한 요구르트를 들고 차에 오르니 다른 기사였다. 성씨는 카를로스. 차가 달리는 곳은 리스본의 구시가였다. 7개의 언덕 아래서 도도히 흐르는 떼주 강가에 놓인 컨테이너를 보며 사이오다리를 세 번째 건너는 기분이 괜찮다. 희미한 가로등을 이고 조깅하거나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드문드문 오갔지만 대체로 한산한 보도. 꼬박 뜬눈으로 세모를 지새우는 습속 탓이란다. 연말을 치르는 양태를 볼라치면 그 민족적 기질을 알 수 있다는데 이들은 아무래도 우리네 망년회를 닮은 듯하다. 다만 곤드레만드레 술이 사람을 해칠 때까지 의식을 잃는 문화가 문제인 터.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풍경 속에는 흙으로 채색한 공동묘지도 있다. 어차피 인류문화는 면면히 이어온 종교의 다원성과 비례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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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지막한 중간분리대를 지나 도착한 마리아루시공원. 두툼한 역사를 머금은 현장에는 벨렘탑(Torre de Belem)이 있었다. 이를 떼주강의 귀부인이라 불렀다. 굳이 비유하라면 아담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랄까. 우아미보다는 소박미에 가까운 편. 마누엘양식의 3층짜리 세계문화유산으로 1층은 한때 감옥으로, 2층은 마리아에게, 3층은 왕족의 거실이었다. 술병과 휴지가 널브러진 잔디밭에는 비록 모형일망정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비행체가 가로놓여 있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허술한 얼개.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다와 육지의 접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해 리무진에 올랐다. 이들의 영웅 바스쿠다가마(Basco da Gama, 1469~1524)가 항해를 시작한 지점을 지나 단 30초 만에 만난 제로니모수도원(Mosteiro des Jeronimos). 낡은 회백색 외벽을 해산물(조개류, 밧줄, 그물 등)로 장식한 외양이 이채롭다. 1502년 마누엘 1세가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해 지은 세계문화유산. 넓고 투박한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내부로 들어가니 곧바로 바스쿠다가마의 석관묘였다. 한국적 사고로는 해괴한 느낌이로되 이들의 정서는 외려 이같이 밀착되기를 바라는 흐름이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둘러보니 웬 조각상들을 그리 덕지덕지 붙여놓았는지 정신이 산란할 지경. 양쪽으로 난 두 개의 문은 천국과 지옥의 관문이라는데 사후세계를 그린 상징물치고는 요란한 느낌마저 들었다.
 
  멀찍이 항해왕을 기리는 엔리케탑이 보였다. 달리는 차안에서 본 대통령궁의 경비병은 근엄했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로시우광장(Placa de Rossio). 트램이 다니는데 탑과 분수를 두른 바닥 문양이 볼만했다. 뱀들이 꿈틀거리듯이 꾸민 장방형 마당에 공력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대지진 때 쪼개진 대리석 파편으로 맞춘 도로 옆에는 예전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방문을 환영하는 공원이 있고, 엉성한 보도를 따라 늘어선 식당가에서는 영업에 여념이 없다. 그 반대편은 코메르시우광장이었고 폼발광장으로 이어졌다. 비둘기 떼가 모이를 쪼는 곳은 개선문. 나란히 노란 색깔의 관청을 지었고, 조르세 1세와 페르난도 4세의 기마상을 세웠다. 역시 노천에서 먹기를 좋아하는 품은 여타 유럽과 같다. 흐트러진 보도블록의 꾸밈새나 들쭉날쭉한 도로 경계석을 보면 정치(精緻)함과는 거리가 멀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36호)에는 ‘포르투갈의 풍광 : 수더분해 정겨운 풍경화’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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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포르투갈의 풍광 : 바스쿠다가마가 묻힌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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