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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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참한 대지진을 현명하게 수습했다는 폼발의 업적을 들으며 일행은 또다시 2,278m 길이의 사이오다리를 건넜다. 길가에 늘어선 소나무에는 잔가지들이 많다. 가이드는 연신 복잡다단한 이베리아반도의 역사를 풀어놓았다. 하지만 워낙 배경지식이 일천해서인지 귓속에 깊숙이 와 닿지 않았다. 단 하나 필자의 펜을 움직인 말은 재밌게도 2,000년 전 고적은 남아있을지언정 1400~1500년 사이에 형성된 유적은 전무하다는 역사. 이를테면 철저한 파괴와 도말이 부른 결과였다. 처절한 목적을 세우고 조직적으로 없애버린 연유에 대해 골똘히 숙고하는 사이 자꾸만 눈앞을 방해하는 게 있었다. 흡사 사다리 모양으로 이어지는 전봇대의 형상들. 기능상 언뜻 대동소이할 것 같은 데도 이처럼 나라마다 색다르니 ‘이국적’이라는 낱말이 생생한 참이다.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무대인 덕분에 때 아닌 관광특수를 누리고 사랑과 보물 가운데 택일하라는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음은 거의 신앙적 차원이 아니면 불가능할 터다. 그렇더라도 지중해의 잔잔한 물결이 헬레니즘을 발생시켰다는 대목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코발트빛 풍경을 두고 퍽 아름답다고 평할 수는 있으되 거센 물살이 없어 쓸 만한 물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하는 데서 어떤 문화의 원류를 도출했을지는 내심 미지수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아직 미개한 시대를 살면서 대양을 주름잡던 시절을 반추하기에는 오늘날 포르투갈의 행색은 너무 초라하다. 개혁이든 개조든 새로운 세기를 여는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나야 한다. 그만치 이 나라의 경제적 갈증이 극점에 달하고 있기에.
 
  지구촌 최서단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신트라(SINTRA)는 의외로 허접했다. 중세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더니 고성 몇 채와 빛바랜 그림이 거의 전부. 요정의 얼굴은 고사하고 왠지 세계자연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조차 부담스럽다. 다만 해풍을 맞고 큰 선인장이 무성하고 내가 좋아하는 산죽만은 역시 싱그러웠다. 그리스가 황량한 수묵화라면, 포르투갈은 투박스러운 산수화랄까? 이들이 굳이 내세우고 싶어 하는 개념은 푸근한 풍요. 그 근거로써 심심찮게 나타나는 유칼립투스나 처처에서 이끼를 양분 삼아 자라나는 수종을 든다. 이를 보면 이곳의 토양이 꽤 비옥한 게다. 강풍을 견디느라 바짝 엎드려 있는 키 작은 나무들. 퍽이나 애처롭지만 이거야말로 음유시인들이 딱히 좋아하는 분위기로써 나의 차분한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기실 이런 유형의 문인들이 여태껏 세찬 바람에 떠밀려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질구질 궂은비를 맞으며 흔들거리는 육중한 차체처럼. 리무진이 멈춘 곳은 대서양의 맨 끄트머리 까보다로까(일명 로까곶). 모두들 엇나가는 빗줄기에 맞서려는 듯 당차게 내렸지만 우리 부부는 잠시 자리에서 누꿈하기를 기다렸다. 민가가 자리한 둔덕에 등대를 짓고 기념비를 벼랑에 세운 것 말고는 사진 한 장 남기기도 민망한 곳. 덩그러니 바닷가에 세운 십자가가 보여 뒤집히는 우산을 부여잡고 아내와 함께 다가갔다. 그러나 스며드는 추위에 강풍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관망하는 일은 가히 엄두도 못 낼 참. 이런 광풍을 헤치고 지표면에 찰싹 달라붙어 사는 생명이 있다니, 급한 김에 내자에게 그 이름을 물으니 그냥 쉽게 선인장의 한 종류란다. 여하튼 별칭인 듯 리스본의 바위를 밟고 십여 호가 모여 사는 척박한 대지의 끝을 돌아본 뒤 맨 먼저 차에 올랐다. 야속하게도 막상 버스가 떠날 때는 햇빛이 쨍쨍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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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설적으로 이런 변화무쌍한 날씨가 이들을 무덤덤한 성격으로 만들었단다. 한여름에는 섭씨 43도까지 치솟고 한겨울엔 강추위가 양쪽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변덕을 부리는 거 또한 우릴 닮았다. 2004년을 기점으로 환경을 보존한다며 부품공장마저 동유럽으로 철수해버린 뒤부터 이 땅의 물질문명은 정신사와의 균형을 잃었다는 시선에도 일리는 있어 뵌다. 고집스레 1차 산업을 고수하며 4차 산업의 격랑을 헤쳐나가기는 더욱 만만치 않을 터여서 창조적 계승을 도외시한 전통으로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순간 자칫 인습으로 내몰리기 십상이지 싶다. 그렇다면 불과 한 세대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의 역사(役事)를 두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추켜세운들 절대 호들갑은 아닌 게다. 때문에 유럽에 한국의 기업을 연구하는 기관이 쉰 곳에 이른단다. 물론 포르투갈에도 특장(特長)은 있다. 여기서 냉동식품이란 없다. 다만 저녁을 실컷 즐김으로써 비만을 부르는 어리석음은 하루속히 버릴 일이다.
 
 
■ 프로필
 
-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이충동에서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감.
- 블로그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1년째 연재 중······.
 
※ 다음호(534호)에는 ‘포르투갈의 풍광 : 파티마에서 만난 마리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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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포르투갈의 풍광 : 후줄근한 신트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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