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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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매일 거리를 오가거나 퇴근 후 즐기는 산책길에서, 또 주말이면 공원을 거닐거나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꼴불견이 있다. 보행 중에 흡연을 하고 꽁초를 아무데나 함부로 버리는 이들, 굳이 담배 불을 붙여가면서 위험스레 운전대를 잡는 일부 사람들의 무감각한 모양새가 그것이다. 그런데 혐연권에 앞서 흡연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동체를 우선하는 시민의식과 공중도덕의 실종을 쉬이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풍토가 자연스레 정착될까?
 
 반가운 일은 일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시행에 들어간 ‘금연에 관한 조례’가 이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학교와 공공건물은 물론 길거리, 공원, 식당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무거운 벌금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이는 행정당국이 무분별한 흡연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써 두 손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미국과 EU 등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지은 마당에 더 이상 망설일 명분은 사라졌다고 본다. 백 번을 양보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흡연을 허용한다면, 그 뒤처리만큼은 깔끔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차제에 흡연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화단이나 지하철 환기구 등 담배꽁초를 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점을 단 한 번이라도 깊이 자각했으면 좋겠다. 그 볼썽사나움은 차치하고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재산 손실과 인명 피해는 어찌할 셈인가? 꺼지지 않은 담뱃불로 인한 크고 작은 산불이 그 얼마이며, 나의 건강은 물론 남들의 소중한 목숨까지 해치는 불장난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잖은가. 제아무리 행정력을 동원해 단속에 박차를 가한다 해도 한계가 있기에 답답한 나머지 어렵사리 드리는 말씀이다.
 
  맑은 공기가 그리워 공들여 올라온 산정에 가서 느낀 점을 말하노라. 왜 거기서까지 담배를 피워야 하는지 캐묻고 싶다. 코앞에서 그런 광경을 접하노라면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거나 사려 깊게 동조하는 흡연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통행이 잦은 아파트 통로나 횡단보도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기호 때문에 이웃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건 부당하다. 나로 인해  타인들이 각종 독성물질에 노출되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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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19세기 말 담뱃대와 곰방대 <출처 = 경기도 박물관> 
 
  흡연에 얽힌 얘기 중 우리 집안에 있었던 삽화를 소개한다. 내용인즉슨 할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주문이자 핀잔이었다. 이는 기실 그간 쌓인 다른 식구들의 원성을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성한 아들이 늙은 어머니의 건강을 염려해 드리는 고언이라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사건의 전말인즉슨 이러했다. 곰방대를 상용한 조모의 뻐끔 담배를 둘러싼 문제였다. 그야말로 온 집안의 골칫거리였는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피워대는 바람에 방마다 역한 냄새가 배고 사시사철 탁한 실내공기로 그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 급기야 할머니는 귀여운 손주들에게까지 기피인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니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던 게다. 하여 부친이 발 벗고 나선 데는 당신의 곰삭은 윤리의식도 단단히 한몫 거들었는데, 남정네도 아닌 아낙네가 공공연히 대놓고 담뱃불을 붙인다는 사실이 꽤나 못마땅했던 참이다.
 
  그렇게 수십 차례 금연을 강권하고 딸들까지 나서서 채근하던 차에 자탄 비슷하게 나온 탄식이 바로 “여잔 여자여!”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생각에는 늙으나 젊으나 여자는 어디까지나 여자인고로, 자나 깨나 몸가짐을 바로하고 이른바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조신하게 처신해야 옳다는 주장이고 신념이었다. 고루할망정 여자란 젊으나 늙으나 남편에게 고분고분 순종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선입견이 뇌리에 꽉 차 있으신 터였다. 돌이켜보면 당신의 어머니가 바로 그 대목에 걸리셨으니 얼마나 맘이 상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필자의 경우 흡연 문제를 비롯한 제반 현안을 굳이 남녀로 나누어 고찰하려 들지는 않는다. 흡연의 심각성에도 경중은 있을 수 있고, 여타 사회적 여건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흡연이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의 폐를 좀먹고, 유전자 변형까지 불러온다면 이는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남녀 공히 불임의 원인이 된다는 게 엄연한 연구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이 백해무익한 흡연에 당당히 맞서야할 당위라고 생각한다. 여성들만이 임신을 하고 육아를 떠맡는 형편에서 여성단체의 분발을 촉구해마지 않는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17호)에는 ‘여잔 여자여! - 꽁초없는 지구촌’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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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여잔 여자여!” 할머니의 곰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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