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논은 생물다양성의 풍부한 생태적 가치 지녀

월곡동 들녘, 많은 생명들 다음 세대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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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만제(경기남부생태교육연구소 소장)
 
 무더웠던 긴 여름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넘실되는 가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은 황금들녘을 떠올리게 되고 애써 시간을 내어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지난 일요일에 찾은 평택시 월곡동 들녘은 몇 차례 이어진 태풍으로 벼가 쓰러지고 물속에 잠기는 일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가을들녘은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로 황금들녘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벼 수확을 하겠지만 10월 초순의 황금들녘은 그 자체만으로도 풍족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성체로 겨울을 나야 할 네발나비와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온 몸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고추좀잠자리는 물론이고 쌕쌔기와 벼메뚜기, 크기가 너무 작아 쉽게 존재를 놓칠 수 있는 꼬마꽃등에와 역삼각형 모양을 지닌 섬서구메뚜기와의 특별한 만남은 가을들녘이 제공하는 또 다른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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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들녘의 아이콘 ‘벼메뚜기’
 
 한주의 끝 무렵에 찾은 월곡동 황금들녘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기억들 중에서 몇을 떠올려 보면, ‘누렇게 익어가는 벼 사이로 열매를 맺은 여뀌와 올챙이고랭이 등의 논잡초’, ‘부쩍 늘어난 주변의 먹이들로 거미줄 치기에 바쁜 긴호랑거미와 무당거미’, ‘논두렁과 벼 사이를 뛰어다니며 한철을 보내고 있는 쌕쌔기와 벼메뚜기’, ‘왕사마귀의 눈치를 보느라 경계의 끈을 놓지 않은 좀사마귀’ 등 한둘이 아니지만 최고의 장면은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 집중력을 보인 섬서구메뚜기들의 정중동일 것이다.
 
 섬서구메뚜기는 평택지역 전역에서 늦가을까지도 눈에 띠는 메뚜기류 중 하나이다. 머리의 앞쪽은 가늘고 가슴은 넓으며, 배 끝은 다시 가늘어져서 전체적으로 베를 짤 때 쓰는 북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원뿔 모양의 머리와 짧고 칼 모양의 더듬이 등 전체적인 모양이 납작해 방아깨비를 축소한 듯 보여 지금도 많은 아이들은 이 종을 방아깨비와 혼돈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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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지만 아름다운 ‘꼬마꽃등에’
 
 두꺼비 암수처럼 자연생태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메뚜기 혹은 방아깨비로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는 섬서구메뚜기의 경우도 가장 눈에 띠는 특징은 번식철을 맞아 출현하는 암수의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곤충을 오랫동안 봐왔던 필자도 오래전에 암수를 구별하지 못했던 친구가 섬서구메뚜기인데, 주변의 벼메뚜기도 어느 정도 암수 크기의 차이가 있지만 섬서구메뚜기는 정말 착각하고 싶을 정도로 짝짓기보다는 엄마가 아가를 업고 다니는 형상이라고 할 것이다. 도감에 나와 있는 수컷의 몸길이가 25mm인 것에 비해 암컷은 42mm 정도로 암컷이 수컷의 두 배 정도로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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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체로 겨울을 나야 할 ‘네발나비’
 
 들녘에서 만나게 되는 주된 곤충이 메뚜기류에 속한 친구들이긴 하지만 생각보다는 나비와 잠자리 또한 적지 않은 편이다. 나비류의 경우 애벌레가 먹이식물의 잎을 찾는다면 성체는 꽃의 꿀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논두렁을 중심으로 논주변의 풀밭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나비들이 의존할 왕고들빼기, 미국쑥부쟁이, 미국가막사리 등의 들꽃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과 그 주변에서도 배추흰나비와 네발나비, 흰띠명나방과 줄점팔랑나비 등의 나비류가 날갯짓을 이어가고 있었다.  
 
 뒷날개 중앙에 흰색의 ‘C’자 무늬가 있어 예전에는 ‘남방씨-알붐나비’라고 불리었던 네발나비는 생태적으로 여느 나비와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 남다를 수 있다. 성충은 연 3회 발생하는데 6월과 7월 중순에 그리고 9월 이후에 나타나게 되며, 지금 눈에 띠는 가을형의 경우 애벌레나 번데기가 아닌 지금 보이는 모습 그대로 겨울을 난 후, 내년 기온이 오르는 이른 봄부터 다시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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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으로 성숙한 ‘고추좀잠자리’
 
 주변 산지 풀밭의 곤충상과는 달리 물을 저장하는 둑 역할과 함께 수시로 풀베기 작업을 함으로써 생물다양성이 떨어지는 황금들녘이지만 고추좀잠자리, 큰자실잠자리, 꼬마꽃등에와 올해 번식을 통해 당당한 개구리의 모습으로 변태에 성공한 청개구리와 참개구리, 옴개구리, 한국산개구리 그리고 논도랑이나 웅덩이(둠벙)에서 그들만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물자라와 송장헤엄치게, 애기물방개와 아담스물방개, 논우렁이와 수정또아리물달팽이 등의 담수무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생명들이 황금들녘에서 이미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논은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습지의 하나이다.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쌀 생산이라는 전통적 의미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의 풍부한 생태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논은 생명이 숨 쉬는 곳으로 조류와 어류, 파충류, 양서류, 절지동물, 연체동물, 미생물, 식물체 등 다양한 생물체의 중요한 삶의 터전으로 지난 2008년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제10차 람사르 총회 이후 그동안 쌀 등 식량의 생산지로서만 간주되던 논을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로 세계인들이 재평가하며, 논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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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서구메뚜기의 종족보전을 위한 노력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뉴욕 타임즈 기자로 시작하여 이 시대 유명 과학 전문 작가 중 한 명인 ‘나탈리 앤지어’가 쓴 대표작의 제목 중 하나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넉넉한 이 가을에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벼이삭과 함께 논이라고 하는 특별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꿋꿋이 살아가는 생명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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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제의 평택의 자연] 생명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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