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조하식(한광고 교사, 수필가·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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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시커먼 속내는 들추지 않아도 뻔했다. 웬만하면 대충 넘어가고 마는 단체 손님의 속성을 십분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폭리를 취하는 비양심의 그늘에는 틀림없이 동업하는 장사치들과의 담합이 있었을 게다. 곧 주는 대로 대충 먹고 다른 데에 들러 보충하라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서는 초록은 동색이라며 악이 악의 편을 드는 데도 불구하고 무슨 뾰족한 수를 쓰기 쉽지 않다. 게다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주최 측에 한번쯤 점잖게 이의를 제기할 뿐 별다른 대응책을 강구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남기자고 벌이는 좌판이라도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끼니가 돌아올 때마다 다 같이 연대해 항의할 상황이로되 누구 하나 냉큼 동조하며 나서는 이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다. 둘째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뒤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만난 대회 진행자더러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 결과는 별무효과. 말하는 이의 요구사항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대수롭잖게 응대하는 태도부터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큰소리를 치고 소중한 가족캠프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화가 치밀고 답답하지만 그쯤 해서 그냥 덮어둘 수밖에는 없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속상한 터에 어느새 가족 단위 팀워크 연수에도 불협화음을 불러오고 있어서였다. 난감한 건 그때마다 간식거리를 사 나르기도 곤란한, 그렇게 어정쩡하게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는 고심 끝에 먹을거리 조달방침을 바꾸기로 했다.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무등산 수박의 주산지 근처이니 찾아보면 맛있는 수박이 지천일 거라는 지레짐작이었다. 산세를 감안한 예상은 적중했다. 고맙게도 가까이서 수박 트럭을 발견한 참이었다. 잘 됐다는 생각에 냉큼 큰 놈 두 통을 사왔다. 문제는 용량이 적은 냉장고 탓에 차가운 수박 맛을 때맞춰 볼 수 없었다는 점. 나는 대번 꾀를 냈다. 소형 냉장고 안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잘게 잘라 조각조각 비닐에 싸서 빈틈없이 집어넣었다. 과일(수분과 당분이 주성분)로 배를 채운 건 거기서 터득한 고육지책이자 현실을 고려한 연수책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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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그렇게 조치를 취하고 나니 적당한 포만감이 들어 이후는 잡념 없이 교육에 충실할 수 있었다. 감사할 제목은 비록 식사는 여전히 허접했으나 연수 내용은 시간이 갈수록 무르익듯 풍성해졌다. 기대한 대로 쏟아내는 가치관을 담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결론적으로 지금껏 참가한 연수 가운데 단연 으뜸이었는데 특히 기독교세계관은 나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이치에 눈을 뜨게 한 통로였다. 특히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접근이야말로 해맑은 희열을 안겼다. 지난날 불필요한 영적 체증이 한순간에 싹 가시는 기쁨이었으나, 아쉽게도 개중에는 본 캠프에서 지향하는 취지에 걸맞지 않은 강사도 뉘처럼 섞여있었다.
 
  핵심을 꿰뚫은 대목은 창조세계를 사모한 근거였고 흐름이었다. 본시 우주적 구도가 잡히고 크고 작은 시야들이 열리니 일부 비뚤어진 논리는 바로 섰고, 세간에서는 저만치 비껴나 비뚤어진들 그리 대수롭잖게 여겨졌다. 복음이라는 장대한 합목적성(合目的性)에 합류하여 애타게 찾던 그 에덴을 회복한 느낌에, 그간 이모저모로 상하고 멍든 심령이 말끔히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시나브로 묻은 홍진(紅塵)의 비몽사몽에서 깨어나 산뜻한 샛바람을 쏘인 듯 복음에 초점을 맞춰 연수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예정한 신학의 문을 두드렸고, 경직된 사고의 빗장이 풀리면서 조촐하나마 글월의 봇물을 트는 계기를 마련했던 참이다.
 
 
■ 프로필
 
 국어를 가르치는 문인(수필가: 한맥문학 천료, 시조시인&시인: 창조문학 천료), 교사로서 신앙산문집, 수필집, 시조집, 시편집, 기행집 등의 문집을 펴냄.
- 블로그 - “조하식의 즐거운 집”
http://blog.naver.com/johash
- <평택자치신문> “세상사는 이야기” 10년째 연재 중
 
※ 다음호(507호)에는 연수에 깃든 얘기 ‘은혜로 얻음 결과물’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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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연수에 깃든 얘기 ‘벨캠프의 그림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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